'서북청년단'이 상당한 이슈다. 하긴 해당 명칭은 과거 백색테러 행위로 악명을 떨치며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돼 왔던 단어이거늘, 이를 재건하겠노란 사람들이 기세 좋게 등장했으니 이슈가 될 법도 하다. 그런데 많고 많은 이름 중 왜 하필 '서북청년단'이었을까?
사실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단체들의 발호는 이미 예견됐던 상황이다. 지난 추석 연휴 당시 온라인의 울타리를 과감히 뛰쳐나와 광장에 섰던 '일베'가 실은 서북청년단 등장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이는 주로 온라인의 음습한 곳에서 활동해오던 무리들이 세월호 정국을 틈타 유가족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려 그들만의 공간으로부터 뛰쳐나온 꼴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실종된 정치 탓에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지루하다 싶은 인상을 심어 주었고, 이 틈을 노린 일부 세력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이른바 종북세력과 등치시키며 폄훼를 시도하더니 이내 고립시켜 나갔다. 그나마 유민아빠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이 유일한 불씨가 된 채 이들을 지탱시키는 원동력이 돼 왔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단식 중단과 함께 약해질 대로 약해진 세월호는 하이에나와 같이 무작정 달려드는 무리들에 의해 마지막 먹잇감이 된 채 갈갈이 찢겨 나갔다. 그의 선두엔 '일베'라는 자칭 애국보수단체가 끼어 있었다.
일베가 온라인 위주의 활동에서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오게 된 배경엔 세월호 국면이 크게 작용했다. 자신들의 훼방과 음해 공작으로 인해 점차 약해져가는 세월호를 목도하며 반대로 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상승해가고 있었다. 세월호의 숨통이 멎어갈수록 외려 그들은 사기충천해 가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던 셈이다. 광화문광장에서의 폭식투쟁은 그들만의 자신감을 표출하기 위한 일종의 포효이자 세상을 향한 당당한(?) 외침이었다.
일베라는 커뮤니티가 광장에 우뚝 서기까지 그들은 사실 그들 내부 시스템에 의한 힘들고도 지난한 여정을 거쳐왔다.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야만 인기글에 등극하게 되고, 따라서 숙명처럼 보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일베 시스템 속성상 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입지를 굳건히 다져온 것이다.
그들이 광장에 설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세월호라는 그들의 먹잇감이, 처음엔 폭발적인 전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자 자연스레 이에 주목하게 되고, 이윽고 대통령과 정치권의 수수방관으로 인해 국민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차 멀어져가며 이내 만만한 대상으로 전락, 말랑말랑해지자 본격 물어뜯기에 나선 덕분이다. 세월호를 빌미로 전면에 등장하게 된 셈이다. 물론 권력층의 암묵적인 비호도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오마이뉴스
반면, 새롭게 등장한 서북청년단은 일베에 비해 지극히 이기적인 집단이라 여겨진다. 한 마디로 일베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걸치기 신공을 펼쳐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일베가 지난한 투쟁(?)을 통해 본격 광장으로의 진출을 선언하기까지 정체를 드러내놓지 않은 채 은둔 모드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일베 등이 밥상을 다 차려놓은 뒤에야 등장하여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려 시도하고 있다.
일베의 자극과 경쟁 시스템에서 비롯됐을 법한 지독한 선명성 경쟁을 통해 자신들이 보다 극우적 색채를 띄고 있느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광기적 색채를 지닌 '서북청년단'이란 이름은 이들에게 더없이 달콤한 소재였을 테다. 최근 설립된 서북청년단의 첫 활동은 다름아닌 세월호 노란 리본 철거였다. 이유 또한 거창하다. 가장 큰 현안이고 세월호 정국 때문에 국론 분열이 심각하기 때문이며, 종북 세력들이 배후에서 유가족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한 마디로 숨통이 멎어가는 세월호에 마지막 한 방을 가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겠노라는 얄팍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때문에 극우 신진 세력인 이들 '서북청년단'은 어쨌거나 '일베'에 비해 비교열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들의 준동이 의미하는 바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에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숙제가 보다 복잡다단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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