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유족 손잡은 교황이 감동 주는 까닭

새 날 2014. 8. 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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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행보가 연일 화제다.  언론에서는 파격이란 표현과 함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훑으며 보도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이른바 그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난 별로 관심이 없다.  무릇 성직자라면 그 어떤 계층보다 청렴해야 하고 또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이 뇌리에 깊이 자리한 탓이다.  때문에 그의 행보 역시 파격이 아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다만, 그가 유독 대한민국 이 땅에서 환대받으며 시선을 끄는 건 이제껏 무늬만 종교인인 위선적인 두 얼굴의 성직자들이 주를 이뤄왔던 한국적 토대로부터 상대적으로 현 교황의 행보가 더욱 투명하면서 도드라지게 다가온 때문 아닐까 싶다. 

 

아울러 현재 국민들 앞에 놓여진 삶의 현실은 모든 영역에서 녹록지 않은 상황인데 이를 보듬고 위로해 줄 만한 진정한 지도자는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아무리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력집단은 그저 자신들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민 다수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줄을 모른다. 

 

이러한 시점에서의 교황 방문은 어쩌면 한없이 힘들고 지친 우리 국민들의 메마른 감정에 불을 지핀 셈이다.  국민들은 그의 방문에 극적으로 환호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정신적인 위안을 얻고자 한다.  결국 교황을 향한 국민들의 커다란 반향은 현재 우리 극장가에서 영화 '명량'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이유와 비슷한 맥락 아닐까 싶다.

 

ⓒ민중의소리

 

약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야 하며 물질이 아닌 사람 중심의 사회가 돼야 함을 호소하고 나선 교황으로부터 국민들은 최근 수년 내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참 지도자의 상을 발견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비록 종교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6일 서울 광화문에서의 시복식이 열리기 직전 카 퍼레이드를 하던 도중 교황은 차에서 내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단식 중인 세월호 유족 유민아빠(김영오 씨)를 만나 손을 잡고 그를 위로해 주는 모습이 포착됐다.  뭉클한 감동이 전달되던 순간이다.



우린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공통적으로 특정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교황이 아닌 우리 대통령이 대신하는 장면이다.  그랬다.  정작 세월호 유족들을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사람은 교황이 아닌 바로 우리 대통령이 됐어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반대로 유족들의 단식 농성에 대해선 나몰라라,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 촉구에 대해선 공권력을 동원, 강제 해산이라는 무지막지한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철저한 진상 규명, 재발 방지 그리고 책임자 처벌에 대한 약속은 진작 저버린 지 오래다.  

 

ⓒ서울신문

 

지금까지의 박 대통령 행보로 판단컨대 국민 앞에서 흘렸던 눈물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대국민사과 역시 진정성이 없었던 걸로 읽힌다.  물론 이는 당시에도 논란을 빚었던 대목이긴 하지만 이번 교황의 행보를 통해 보다 확실해졌다.  세월호 참사 다음날 팽목항을 찾았던 박 대통령은 유족들을 위로해 주기보다 역으로 유족이 무릎을 꿇고 대통령에게 빌어야만 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자 교황의 행보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5년 집권은 생각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으로 보건대 집권 3년차면 벌써부터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어쩌면 박 대통령의 지도자상을 좋은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 찬 셈이 돼버렸다.

 

처음부터 피해자 가족들을 보듬어주고 위로하는 모습을 전 국민들에게 선보였더라면, 일부 콘크리트 지지층의 맹목적인 지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작금의 현상은 애초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기본적인 덕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다.  외려 이를 종교 지도자인 교황이 대신 보여줌으로써 박 대통령은 체면을 구긴 모양새다.  그동안 우리 대통령에게 있어 지도자로서의 덕목이 얼마나 부실했던가를 교황과의 행동 하나 하나 비교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셈이기 때문이다. 

 

종교란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측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월호 유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그 자체만 놓고 볼 때 사실 그리 특별한 행동이 아니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은 우리에게 왜 특별하게 다가오는 걸까? 

 

대한민국의 국가지도자는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거나 보듬어주기는커녕 이들과의 약속마저 저버린 채 세월호 자체를 아예 지운 듯한 느낌이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빠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갈수록 멀어져간다.  그 사이 유족들을 향한 비난과 비하의 강도는 점점 높아지며 급기야 작금의 경제 침체의 원인을 모두 세월호 탓으로 돌리려 하는 무모함마저 보이고 있다.  유족들 더러 나라 말아먹을 일 있냐며 이제 제발 그만 좀 하라는 몰지각한 목소리가 점차 비등해져가고 있다.  제대로된 세월호 특별법 없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는 결코 어림 없는 소리일 텐데도 말이다.

 

국가지도자가 외면하고, 정치권마저 나몰라라 내팽개친 사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던 유족들은 하나 둘 병원에 실려가는 처지가 됐다.  이들의 외침과 하소연은 대통령과 정치권 그리고 권력의 눈치만 살피는 정부에 의해 점점 기력을 잃으며 묻혀가고 있다.  국가지도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외면하고 있는 와중에 프란치스코 교황만이 낮은 곳을 향해 그들을 보듬고 위로해 주는 장면을 연출했던 셈이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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