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 부끄럽다

새 날 2014. 8. 1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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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현재 단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의 편지 한 통이 우리 사회에 조용하지만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녀의 편지 속엔 세월호 참사 이후 120일 동안의 심경과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내용이 담담하게 적혀 있다.

 

ⓒ머니투데이

 

정부는 오직 권력의 눈치만 살필 뿐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으며, 믿을 수 없는 언론은 참된 진실을 외면한 채 자꾸 유가족과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왜곡하려고만 든다.  이번 참사를 통해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세상에 대한 신뢰마저 잃었다.

 

우리나라는 미쳤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겉만 선진국인 우리나라를 바꿀 수 있게 도와달라.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나라를 믿을 수 있도록 이 썩어 빠진 정부를 제발 바꿔 달라.

 

어른들만 믿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친구들과 그 가족, 그리고 앞으로 비슷한 사건의 재발로 인해 또 다시 희생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법 제정과 친구들이 왜 자신들의 곁을 떠나게 됐는지 그 진상규명을 밝힐 수 있도록 도와달라.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린 학생들에게 또 다시 지금과 같은 나쁜 세상을 물려주어 죄를 짓지 않게 도와달라.

 

학생의 뼈아픈 지적은 기성세대인 나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어느덧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한쪽 가슴을 후벼판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 결국 죄없는 아이들을 허망하게 떠나도록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자식뻘인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이 나쁜 세상을 물려 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욱 답답한 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의 첫 단추가 될 특별법 제정마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막혀 표류하고 있고, 국정최고책임자는 이로부터 애초 관심을 끊은 상태에서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며 이를 살려야 한다고 정치권을 윽박지르다 교황의 면전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바꿔가며 또 다시 세월호에 관심있는 척 이를 언급하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현상을 몸소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른들은 반성할 줄을 모른다.  나이만 더 먹었을 뿐 아이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 없다.  어른들은 세월호에 대한 진상 규명을 통한 재발 방지 장치 마련보다 외려 이를 덮고자 혈안이 돼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또 다시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불안해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최근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정치권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할 정도다.  경기 악화의 원죄를 모두 세월호에 뒤집어 씌운 채 경제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겠노라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서민들을 위한 대책이라기보다 자본과 기업들을 위한 밑밥 깔기의 일환으로만 보일 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발의한 크루즈산업육성법안이다.  2만톤급 이상 크루즈 선박에 외국인 대상 선상 카지노를 허용한다는 게 주요 골자인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안전대책 없이 이를 추진하겠노란 발상은 결국 세월호에 대한 반성 따위 애초부터 전혀 없었노라 자인하고 있는 셈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한심한 현상은 또 있다.  일부 정치 세력과 언론들의 세월호 왜곡 및 비하 현상에 동조하며 여론 조작에 나선 어른들이 바로 그러하다.  단원고 학생의 편지 내용이 담긴 기사에 달린 댓글 대부분은 같은 기성세대로서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더럽혀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생때같은 아이들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떠나보낸 일만으로도 부끄러워 해야 할 판국에 어른과 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꾸짖으며 이를 믿을 수 없다고 성토하는 아이를 향해 더러운 댓글로 응수하고 있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아무리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달리한다 해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마저 내팽개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이러한 결과가 대가성이 있는 행태인지 아니면 그대들의 흔한 표현인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된 행위인지는 나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영혼을 판 대가가 어느 정도의 수준일지는 몰라도 이러한 행동 뒤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쯤되면 우리 사회에서 나이만 먹었다고 하여 어른이라 대접해 주기도 어려운 노릇 아니겠는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는 이에 대한 처절한 반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세월호로 인해 상처 입었을 아이를 보듬어주며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 나라를 떠나라며 막말을 퍼붓고, 아픈 상처에 또 다시 대못질을 해대는 당신들이야 말로 기성세대로서의 반성은커녕 뻔뻔함과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니, 정작 이 나라를 떠나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대들일 듯싶다. 

 

같은 기성세대로서, 또한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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