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화면 캡쳐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안전 불감증을 향해 일종의 경고신호를 보내 온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이로부터 교훈을 깨닫지 못한 듯 변한 건 여전히 없다. 특히 안전 불감증을 주도적으로 나서서 혁파해야 할 정부가 외려 이를 조장하고 있는 듯한 대목에선 눈살마저 찌푸려지게 한다.
고속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의 음주가무 행위는 도로 위를 달리는 흉기라 불릴 만큼 위협적인 대상이다. 과연 그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하여, 마치 트로트의 생명력을 연상케 할 만큼 질기디 질긴 전통을 자랑한다. 최근엔 전자기기와 IT기술의 발달과 맞물리며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운전석에서 버튼 한 번의 조작만으로도 버스는 일시에 화려한 무도장으로의 변신이 가능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러한 우리만의 독특한 관광버스 문화에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아니 실은 진작부터 단속과 과징금 부과를 통해 이를 제재해 왔지만, 앞선 이유들 때문에 전국 도로 위에선 여전히 횡행해 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국토교통부가 본격 칼을 빼든 것이다. 관광버스 내 가요반주기 설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신설해 지난 5월 입법예고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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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7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달 29일부터 시행 예정이던 관련 규정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돌연 연기됐단다. 이유는 이러했다. 가요반주기 등 음향장치를 생산하는 업계가 지나친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란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차량에서 DMB를 시청하는 것도 엄연히 불법이지만 DMB 설치 자체는 금지 사항이 아니다. 버스 통로에서 서서 노래 부르거나 춤추지 않고 자리에 앉아 노래 부르면 안전에 문제 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요반주기를 아예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나친 규제다"
가요반주기 관련 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국토교통부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업계의 반발 때문에 관련 법규를 신중하게 검토키로 하였으며 앞으로 업계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전세버스 안전운행 강화 조항을 다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정부는 가요반주기 업계의 이익과 국민들의 안전을 맞바꾸기로 한 셈이다. 알다시피 버스에서의 음주가무 행위는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다. 어쩌면 오늘날의 결과가 있기까지는 관련 업계의 정부를 향한 집요한 로비와 표면적으로는 제지해 온 듯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이를 방조해온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을 테다.
ⓒKBS 뉴스화면 캡쳐
서울시를 예로 들 경우 등록된 관광버스가 3700여 대에 이르지만 사망자가 3명 이상인 교통사고 발생 비율이 시외버스의 2배, 시내버스의 10배에 이를 정도로 안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주가무 행위는 자칫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버스내 음주가무행위는 도로교통법 제49조를 통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위반시 운전기사에게는 벌금 10만원과 벌점 40점이 부과되어 면허정지 40일의 행정처분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실제 단속이 이뤄지는 경우는 직접 본 사례가 없을 만큼 드문 일이다. 도로 위에서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기에 단속이 여의치 않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대부분의 버스에는 이미 가요반주기 등의 음향시설과 심지어 조명시설까지 설비되어 있어 기사들이 승객의 요구에 의해 음주가무를 마지못한 척 응하며 은밀히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과정에서 수고비 조로 금전이 오고가는 건 일종의 업계 관행으로 굳어진 지 오래이다. 운전기사들에게 있어 달콤한 뒷돈의 유혹을 떨치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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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B 설치를 핑계로 가요반주기 설치를 허용해 달라는 업계의 요구와 이에 귀 기울이며 애초의 방침을 후퇴시킨 정부는 모두 불법 행위를 방조한 채 국민들의 안전에 커다란 위협을 가하고 있는 셈이 아닐 수 없다.
가요반주기가 DMB와 비교될 대상이긴 한가? 앉아 부르건 서서 부르건 일단 가요반주기의 존재 자체가 음주가무 행위를 방조하는 셈 아닌가? 이러한 업계의 궤변을 받아들인 국토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최근 규제완화에 적극 팔을 걷고 나선 정부다. 하지만 이런 식의 규제완화라면 안 하니만 못하다.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기업의 이익을 지켜주겠다는 발상 아니겠는가? 규제 완화라는 미명 하에 기업들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국민들의 안전은 뒷전인 정부는 과연 세월호로부터 교훈을 얻긴 한 걸까 모르겠다.
버스 안에 일단 기기가 설치되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테고, 비단 앉아서 이용하든 서서 이용하든 말이다, 이는 결국 대형사고의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일 테니, 애초 버스에 이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게 합리적인 정책 아닐까?
차제에 정부는 신규로 설치하는 행위 규제는 물론이거니와 기존 버스에 설치된 장치 역시 모두 제거하여 음주가무의 욕구를 원천적으로 차단시켜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엔 인허가 비리와 같은 정부의 역할이 한 몫 단단히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여전히 설마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이 불식되지 않는 이상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영역만큼은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과는 반대로 다소 과감할 정도의 강력한 규제와 본보기가 필요해 보인다. 이참에 달리는 흉기인 버스에서의 음주가무 관행을 완전히 뿌리뽑아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기업들의 배 불리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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