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게 배웅 따윈 없어

소주병과 소주잔에 담긴 따뜻한 배려

새 날 2014. 5. 2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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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병의 용량 360..  왜?

 

소주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비단 각 지역별로 종류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민의 희노애략과 늘 함께해온 덕분에 국민 술의 대표 주자라 불리기도 하거니와 워낙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가 있고 또한 배 부르지 않은 채 취할 수가 있어 애주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아울러 술꾼 하면 한 손엔 늘 소주 한 병이 들린 채 술에 거나하게 취해 홍조 띤 얼굴과 빨간 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소주 제조사들의 점유율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광고 경쟁에도 불이 붙기 일쑤다.  각 제조사마다 광고 모델 기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보통 당대 최고의 톱 여배우나 근래엔 시대 조류를 반영하듯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이비뉴스

 

그런데 지역별로 종류가 모두 다르고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지닌 소주이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가 흔히 구입해서 마시는 소주의 병 모양과 크기 및 용량은 한결 같다.  모두 360l 크기의 병에 담긴 채 팔린다.  그렇다면 왜 하필 360일까?  소주 제조업체들의 잇속을 노린 꼼수라는 '소주병의 비밀'이 시중에 널리 퍼져 있지만, 이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과학적인 해석을 곁들여 보자.

 

360 병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건 워낙 오래된 데다 많은 사랑을 받아온 형태이기에 쉽게 바꿀 수 없는 측면이 고려되었을 테다.  하지만 그보다는 무엇보다 알콜 도수와의 연관성이 가장 깊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의 평균 알콜 분해 능력을 반영한 결과라는 의미다.  일례로 알콜 도수가 이보다 약한 막걸리의 경우 최근 가장 많이 팔리는 용량이 750짜리의 형태다.  

 

 

휴대성이나 무게 따위도 고려 대상이 되었을 듯싶다.  소주 또한 용도에 따라 포장 형태가 무척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다.  예로 여행 중 병 소주는 깨질 우려가 있기에 종이팩에 담긴 형태가, 집에서 과일주나 기타 술을 담글 땐 이른바 됫병이라고 하는 페트병에 담긴 형태가 적합할 테다.

 

소주병과 소주잔에 담긴 비밀, 주류제조업체의 상술?

 

그런데 소주가 왜 굳이 360여야 했는지와 50 짜리 소주잔과의 관계를 한데 묶어 이른바 소주 제조업체의 음모론이 시중에서 활개치고 있다.  소주병을 가득 채웠을 경우 360이기에 실제로는 그보다 적은 355 정도가 소주 한 병의 정량일 테며, 때문에 만약 50 소주잔을 가득 채울 시 총 7잔과 한 잔을 미처 채우지 못할 만큼의 미량만이 남게 된다.

 

 

두 사람이 한 병을 사이좋게 나눠 마실 경우 3잔씩 공평하게 돌린 뒤 마지막 한 잔이 부족하게 된다.  세 사람이 마실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네 사람이 마셔도 그렇다.  결국 어떻게 마시든 잔수가 부족하여 추가로 주문할 수밖에 없다.  과연 우연일까?  

 

소주병과 소주잔의 용량엔 이렇듯 한 병이라도 더 팔아보겠노라는 소주 제조업체의 절박한 꼼수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가 음모론의 요체다.  하지만 그럴싸한 시나리오이긴 한데 이는 억지이자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경우로 봐야 할 것 같다.  7잔이란 숫자가 여러명과 함께 나눠 마실 경우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 우연히 이와 같은 이론이 흥하게 됐을 뿐, 소주 제조사들이 이를 애초부터 의도하진 않았으리란 얘기다.

 

소주병과 소주잔에 담긴 따뜻한 배려

 

소주를 굳이 소주잔에 넘칠 만큼 가득 따라 마시지 않는 한 반드시 7잔과 여분의 한 잔을 만들 일은 딱히 없다.  오히려 근래엔 소주잔을 가득 채우기보다 3분의 2 정도만 채워 서로 원샷하기에 부담 없도록 배려하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번진 지 오래다.

 

이럴 경우 7잔이 아닌 8잔 내지 9잔도 거뜬히 만들어낸다.  음주자들이 스스로 잔에 따르는 양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 달라질 수가 있기에 이 부분에서 소주 제조사의 꼼수를 언급하는 건 왠지 억지 논리다.

 

오히려 음주자 뿐 아니라 소주를 판매하는 음식점 주인장의 입장을 고려한 소주 제조사의 따뜻한 배려가 숨어있다.  만약 소주를 혼자 마실 경우 주량을 알 수 없어 폭주하게 될까 봐 7잔을 마신 뒤 조금 남은 소주를 바라보며 자신이 마신 술을 헤아리도록 경각심을 일깨운다.  일종의 경고등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진짜 애주가들은 이런 결과와 전혀 무관할 테니 이들은 논외로 하자.  음주자의 건강까지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네이트지식

 

여러 명이 마실 경우에도 사람마다 주량이 모두 다르기에 서로 협조하여 자신의 주량에 맞게끔 잔수를 결정하도록 배려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양보하는 미덕이 발휘되며, 때문에 우애마저 돈독해진다.  잔수가 음주자 수의 배수로 똑 떨어지게 될 경우 주량에 관계없이 모두가 같은 잔수로 마셔야 하는 불편부당함을 제조사는 벌써부터 간파한 게다.  알콜 분해 능력에 취약한 여성 음주자까지 배려한 세심함이 돋보인다.

 

그뿐인가?  애주가들이 모여 마시게 된다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잔을 부딪히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텐데 마지막 잔수가 항상 어긋나니 자꾸만 추가로 주문하게 될 테고, 이는 음식점 주인장의 매출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져 함박 웃음을 낳게 만든다.  아울러 평소 술로써 끈끈하게 우애를 다져온 애주가들에게 있어선 그들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 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설사 음주자들이 마지막 한 잔이 남게 된 연유로 더 이상 술을 주문하지 않고 자리를 털 경우라 해도 매출이 줄어 음식점 주인장의 얼굴에 시름을 얹기보다 과음에 의해 자칫 음식점 내 소란이나 최악의 경우 난동 개연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마저 볼 수 있기에 주인장의 입장에선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결국 소주 한 병과 소주잔에 담긴 비밀이라며 떠돌아다니는 음모론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삶의 희노애락과 함께 한 잔씩 걸치는 소주 한 잔엔 제조사의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기에 외려 지극히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면모마저 엿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절대 간과해선 안 될 게 한 가지 있다.  뭐든 적당한 게 최고다.  음주 역시 예외가 아닐 테다.

 

참고로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한국의 알콜 소비량은 15세 이상 인구 당 연간 14.4ℓ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최고로 기록됐단다.  특히 독한 술이 흥해 1인당 20도 이상 알콜 소비량이 11.97ℓ로 회원국 평균 2.13ℓ의 5.61배나 된단다.  우린 지금도 충분히 술독에 빠져 살고 있는 셈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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