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방송화면 캡쳐
"대통령은 국민을 지키는 사람이다. 국민이 위기에 빠졌는데 나혼자 살겠다고 도망칠 수 없다"
1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 역을 맡았던 탤런트 손현주 씨의 대사 한 꼭지다. 비록 드라마에 불과하지만, 국민을 지켜주기는 커녕 반대로 국민들이 대통령을 여왕님처럼 떠받들며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과 너무도 극적으로 대비되는 듯하여 씁쓸함이 묻어난다.
더군다나 최근 조문 연출 의혹과 형식적인 사과 몇 마디가 있은 후 진정성 없는 대통령의 태도로 인해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끝끝내 스스로의 책임에 대해 외면하려는 파렴치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청와대가 1일 재난 분야의 컨트롤타워는 자신들이 아니라고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달 23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하여 여론의 질타를 받은 지 1주일만에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외국어로 표현된 '컨트롤타워'라는 용어를 본의 아니게 자꾸 사용하여 미안하지만, 청와대는 국정 컨트롤타워다. 그들 스스로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는 몰라도 엄연히 그러하다. 한 국가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조직이라면 그 하위 개념엔 재난 대응 업무도 당연히 포함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막후 조직이 다름 아닌 청와대다. 이를 외면하겠다는 건 결국 자신들의 권한과 책임을 내팽개치겠노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29일 대통령의 사과가 허언이었다라는 사실을 청와대 스스로가 인증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는 셈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국정 컨트롤타워의 이러한 행태는 고스란히 하부 조직에게로 전이되고 있었다. 물과 공기는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다. 정부가 지난달 26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게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희생자 이송부터 장례 절차까지 전 과정을 1대1로 서비스하겠다던 당초 약속과는 달리 실제로는 공무원 한 사람이 희생자 가족 예닐곱 명씩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유족들의 분통을 사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캡쳐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발생 후 이틀만에 진도 현지로 찾아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지원을 눈앞에서 당장 실현시킬 것이며 만일 지켜지지 않을 시 담당자를 엄벌할 것이라고 철석 같이 약속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짓말이 돼버려 결과적으로 유족들을 두 번 울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엉터리 행정은 또 다른 양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먼저 장례절차를 마친 세월호 참사 사망자 유족들이 1일 진도 사고해역을 찾아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유족들은 이때 사용할 대국민 메시지가 담긴 피켓 제작을 정부에 요청하였으나 집회 및 시위 용품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단다.
ⓒ아시아경제
피켓과 머리띠, 어깨띠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왜 왜 왜 구조가 늦춰졌습니까', '성금은 마음만 받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힐 예정이었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거절당한 것이다. 심지어 문구 수정까지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안하다 용서해라 사랑한다'란 문구가 도대체 왜? 결국 유족들이 사비로 마련했단다.
정부는 자신들의 무능과 허술한 구조활동에 대해 온당한 설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행동마저 집회 및 시위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유족들의 상처나고 아픈 마음을 이런 식으로라도 달래겠다며 나선건데, 이를 보듬어주진 못할 망정 도대체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거절해야만 했을까. 청와대에 계신 그분의 신경을 거슬리기라도 할까봐? 그들에겐 자식도 없는 걸까?
이러한 행태로부터는 스스로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감출 것인가에만 골몰하는 우리네 일부 공직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비친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끓는 마음과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원하는 바램마저 집회와 시위로 규정하는 정부는 정부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일선에서의 부실하고 안이한 행정 대응은 국정 컨트롤타워 청와대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책임 회피의 연장선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형식적인 사과 한 마디로 뭉그적거리며 정작 책임에 대해선 끝까지 회피하고 있는 마당에 하부의 그 어떤 조직이 자신들의 권한과 책임을 다하겠는가.
대통령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는 도미노처럼 아래 조직으로 연이어 전이되며 그들의 행태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책임감은 엄중한 것일 테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은 그저 호통만 칠뿐 스스로에 대한 책임에 대해선 끝까지 외면하려고만 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대통령은 국민을 지키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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