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

새 날 2014. 4. 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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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노라고 전해 들었다.  물론 언론 보도를 통해서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던 사과 방식은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  청와대에서 개최된 국무회의를 통해 이뤄졌단다.  세월호가 불의의 사고로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지 13일만의 일이다.  통곡의 바다가 된 진도 사고 해역 아래엔 여전히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1백여 명의 생명이 잠겨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난 대통령의 사과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비단 국무회의 자리를 빌려 행해진 사과의 형식 떄문만이 아니다.  어차피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면 형식 따위 뭐가 그리 대수겠는가.  대국민 담화 형태가 됐든, 아니면 특별 회견 형식을 빌렸든 내게 건네는 사과 한 마디 속 화자의 마음이 중요하게 와 닿을 뿐, 다른 건 사실 부차적인 일이기 때문일 테다.

 

ⓒ지식채널e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것"

 

'사과(謝過)'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라는 뜻이다.  억지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박 대통령의 사과가 과연 이에 부합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상대방에게 진심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사과의 올바른 태도일 테다.  사과를 한 사람은 분명히 이를 한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사과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지 못한 경우를 우린 흔히 보게 된다.  이는 사과의 표현 속에 자신의 책임 인정 표현을 충분히 담아내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올바른 사과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대통령은?

 

ⓒ지식채널e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것"

 

아울러 난 대통령이 단순히 입으로만 죄송하다며 머리숙이는 걸 원치 않는다.  그저 죄송하다는 마음만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유감이다'란 표현과 함께 머리를 잠깐 아래로 숙이는 정치인들의 수사적이면서 형식적인 사과는 그동안 숱하게 봐왔기에 이번 세월호 참사만은 다르길 바랬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는 시기적으로나 형식과 내용 면을 보더라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 

 

마지 못해 등 떠밀려 한 듯한 대통령의 사과에선 인간적인 냄새라곤 털끝 만큼도 찾을 수 없고, 지극히 전략적이며 정치적인 향기만이 그득하다.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얼마 안 돼 진도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서조차도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책임은 회피한 채 모두 아랫사람들의 잘못만을 탓하며 이를 엄벌하겠노라 호통치기 바빴다.  대통령이 무슨 버럭대장이라도 된단 말인가?  당시 국민들이 정작 듣고 싶었던 건 대통령의 호통이 아닌, 책임 인정을 바탕으로 한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이었을 테다. 

 

그러나 대통령은 사고 관련자와 공무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묻겠다거나 반성해야 하며, 그리고 심지어 퇴출시키겠노라는 격한 표현과 책임 떠넘기기 신공을 남발하면서도 절대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나 잘못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후로 사태 수습은 더욱 꼬이며, 참사 발생 2주가 넘어가는 현 시점까지 생존자 구출 '제로'라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게 하고 만다.



박근혜 정권은 지지율 관리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함을 선보여왔던 터이기에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인한 지지율 폭락에 있어서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은 눈치가 역력하다.  어떠한 악재가 쏟아져도 그때마다 해외 순방길에 나서 패션쇼 한 번 하고 나면 쑥쑥 오르던 지지율이었다.  때문에 이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문 역시 그러한 기회로 활용할 요량이었을 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오바마가 언제 왔다 갔는지를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방한 효과가 미미했을 뿐더러 박 대통령의 화려한 의상 색상이 이슈가 되어 그나마도 방문 효과를 모두 반납해야만 했다.  그 사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발화된 대통령을 향한 분노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만 가고, 일단 급한 불부터 진화하기 위해 정홍원 총리 사퇴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며 '간보기'한다는 인상만 심어주며 대통령을 더욱 곤경 속으로 빠뜨리게 만든다.

 

총리 사퇴 카드가 일정 정도의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 예상했건만, 때문에 후속 조치 또한 그 사이 고민해보려 했건만, 모두가 여의치 않게 되자 결국 히든 카드인 대통령의 사과를 꺼내든 셈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왔다기 보다 필요에 의한 전략적 선택이다.

 

ⓒ뉴시스

 

대통령이 이번 참사에 대해 제대로된 인식을 갖추지 않고 있고, 여전히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는 건 오바마 방문 당시 입었던 의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오바마와 그의 수행단마저 검은색 의상을 입었을 정도로 예를 갖춘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나홀로 파란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이에 대한 변명은 더 괘씸하다.  파란색이 영생을 기원하는 색이라나 뭐라나, 그런 의미라면 합동 분향소 조문길에도 파란색 의상을 입었어야 되지 않나?

 

사과의 조건엔 책임 인정과 그에 따른 재발 방지 및 후속 대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의 부처명을 안전행정부로 변경한 일이 있다.  '안전한 대한민국'에 방점을 찍은 정부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무능함 때문인지, 안전행정부를 놔두고 '국가안전처'라는 국가 재난 컨트롤 타워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국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없기라도 했단 의미인가?  안정행정부가 국가 재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오고 있지 않았던가?  새로운 부처 하나 더 만들어봐야 정부 조직만 비대해질 뿐 내용물이 바뀌지 않는 이상 걸포장이 달라진다고 하여 뭐가 달라질까?  대통령의 인식이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와대에선 사과가 늦어진 데엔 박 대통령의 평소 성품과도 관련이 있단다.  사태 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즈음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 앞에 나설 것이란 의미로서 자신들을 대단한 완벽주의자라도 되는 양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쯤되면 핑계도 참 가지가지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사과의 형식이 중요한가?  마음이 중요하지.  대통령의 마음 속에 진정성이 담겨있다면, 국민들은 그를 느낄 수 있었을 테고, 적어도 지금처럼 참사에 따른 국민적 분노가 대통령을 향해 가고 있진 않을 테다.

 

ⓒ서울신문

 

대통령을 향한 국민들의 심기가 어느 정도로 불편한지는 29일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통령과 주요 정부 인사들이 합동분향소에 보낸 조화가 밖으로 내쫓기는 수모를 당하고 만 것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심지어 대통령이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였지만,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조문 행위마저 너무 가식적인 행태 아니냐며 네티즌들의 도마에 올라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진지하게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 존재했더라면 대통령은 상황 판단이나 정치적 고려 따위 없이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국민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어야 함이 옳다.  적어도 이전 대통령들은 그랬다.  그저 남 탓만으로 일관하며 정치적 셈법 따져 계산기 두드리고 주변인들에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주위가 온통 불리하게 돌아가자 결국 마지못해 사과의 형식을 빌린 것 뿐일 테다.  엎드려 절받기가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대통령은 사과의 필요충분조건인 책임 인정과 개선 의지, 이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형식 또한 괘씸하다.  절대 국민과 맞대면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대통령이다.  때문에 난 대통령의 사과를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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