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근혜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은 낙제점이다

새 날 2014. 4. 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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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과거의 교훈도 잊은 정부의 허술한 대응

 

1970년 12월 15일 제주도 서귀포항과 부산항을 운항하던 362톤급 여객선 남영호가 제주 상백도동 25마일 해상에서 침몰했다.  하지만 배가 침몰한 지 무려 6시간이 지나는동안 재난 당국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거꾸로 외신의 보도에 의해 알게 됐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자 가족이 문의를 해도 정부는 알아보는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326명의 승객 및 선원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빚어지고 말았다.  역대 최악의 해상사고다.

 

ⓒ연합뉴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던 서해훼리호가 침몰하여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고 초기 140명이었던 승선인원수는 어느새 221명으로 늘어났고, 실제로는 362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었다.  기상 악화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시도한 운항과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 대책을 소홀히하여 빚어진 전형적인 인재였다.


남영호 침몰로부터는 44년, 서해훼리호 침몰로부터는 21년이라는 제법 긴 세월의 흐름이 있은 뒤인 2014년 대한민국, 안타깝게도 당시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세월호 침몰의 결정적인 이유는 선사와 선장 등 선사 직원들의 안이한 행동에서 비롯된 탓이 크지만, 어차피 이는 검경의 합동수사로 면밀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이고, 문제는 배의 침몰 이후 정부가 벌인 어처구니없을 만큼 허술한 대응 조치다.



여객선의 침몰 사태 수습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과의 사투다.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점,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한 명의 실종자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목숨을 건, 비록 재난 당국의 어설픈 대처가 욕을 먹을지언정, 구조대원들의 노고에 대해 결코 잊어선 안 될 테다.

 

오락가락 극도의 혼선 부추긴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꿔가며 치안과 안전에 그 어느 정부보다 의욕을 보여온 박근혜 정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위기 관리 능력은 그야말로 황망하다.  안전행정부의 '안전'자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세월호 침몰이 있은 지 얼마후 보도된 '탑승 승객 전원 구조'라는 얼치기 속보는 정부의 무능함을 알리는 본격 신호탄이었다.

 

ⓒ한국일보

 

세월호가 침몰한 지 사흘째인 18일, 실종자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도 있는 긴박한 시간의 흐름, 이 상황에서 보여준 정부 당국의 오락가락 혼선은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던 피해자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해주기를 목 빠지게 바랬던 전 국민을 노여워하기에 충분했다.

 

이날 오전 수색대원들이 선체 진입에 성공했다는 속보가 뜨며 모두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던 진도체육관에서도 연이어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잠시후 이는 사실이 아니라며 정정보도가 떴다.  이런 식의 오락가락 보도는 실종자 생사의 촌각을 다투던 18일, 하루종일 이어지며 결국 언론 보도 자체를 불신하게 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양경찰청 간 각각 다른 발표로 혼선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이런 중차대한 재난 상황 앞에서 이를 총괄 지휘할 컨트롤 타워가 없어 우왕좌왕한다는 건 서해훼리호 등 과거의 참사로부터 얻은 교훈 따위 모두 망각하고 있음을 인증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방문과 호통이 있은 뒤에야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재난 당국을 보며, 차라리 대통령이 직접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의 수장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답답하기만 했다.

 

 

더욱 황당했던 건 구조자 숫자의 번복이다.  탑승자의 숫자가 세 차례나 번복되더니 18일엔 한 명이 늘어난 476명이 되었고, 심지어 구조자의 인원수가 줄어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탑승객 수는 첫날 477명에서 이후 459명, 462명, 475명, 476명으로 계속 번복돼 왔다.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에 이어 179명이었던 구조자는 18일 밤 10시 20분 현재 5명이 줄어든 174명이 되었고, 실종자는 5명이 늘어난 274명이 됐다.  구조자 인원의 변경은 네티즌들이 직접 중복된 이름을 확인하여 이의를 제기해 이뤄진 것으로, 정부의 허술한 대처 능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한편 여객선 침몰 피해자를 위한 '가족지원 상황실'은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사흘이나 지난 뒤에야 마련돼 늑장대응이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원성과 분노가 연신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급기야 정홍원 국무총리가 18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구조수색 활동 정보 발표를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로 일원화하도록 지시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3일만에 이뤄진 그야말로 너무나도 발빠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난 3일간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사이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 한계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있다.

 

외신들 "세월호 사건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

 

 

외신들은 후진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침몰사고가 한국에서 발생했다며, 과거의 숱한 참사 경험으로부터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꼬집고 나섰다.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뉴욕타임스 "전쟁 때가 아닌 시기에 발생한 최악의 참사", "20년 간 한국에서 일어난 해상 사고 중 최악"

포린폴리시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여객선 침몰 사고가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 "당국의 혼선과 더딘 구조 작업으로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이 분노로 변했다'며, 총리가 물 세례를 받는 등 불신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CNN, 워싱턴포스트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모두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등 불신을 키웠다"

 

재난 당국의 어이없는 행태에 실종자 가족들은 또다시 울분을 삼켜야 했고, 넋놓은 채 하염없이 실종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이들의 가슴엔 커다란 멍울이 생겼다.  이렇게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간은 더 흘러 사고가 있은 지 어느덧 나흘 째를 맞이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은 정부의 무능함과 함께 바닷속에 묻혀 한없이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의 위기 대응 시스템 업그레이드해야

 

정부의 진정한 능력은 일상이 아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은 완벽한 낙제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고 자체가 후진국형이 명백하지만, 이미 눈앞에서 벌어진 사고야 어쩔 수 없다손쳐도 이후의 사고 수습 대응은 기민하고 정확했어야 함이 옳다.

 

이런 사고 하나에도 우왕좌왕 정신을 못차리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어찌될까 싶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참극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전쟁 자체로 인한 참극이 아닌, 우리 사회 내부의 혼란 가중과 혼돈에 의한 자중지란의 상태 말이다.

 

선진국은 달리 선진국이 아닐 테다.  우리의 경제적 볼륨이 아무리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여 표면상으론 비슷한 수준처럼 보인다 해도 국민들의 정신적 수준이나 이번 참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 같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여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이번 세월호 참사가 우리 스스로 선진국이 아님을 전 세계에 증명해 보인 셈이 아니면 과연 무얼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참사에서 얻은 교훈조차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 채 매번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간접경험도 모자라 무수한 직접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 실제 상황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뼈 아프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모토로 내걸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제대로된 위기 대응 시스템 구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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