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오늘아침 아이의 인사가 더욱 소중했던 이유

새 날 2014. 4. 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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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부모 눈에는 제 자식이 다 잘나고 귀여워 보인다는 의미다.  그런데 자식을 키우는 애비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속담이 항상 옳지는 않다.  비록 내 아이이긴 해도 가끔은 무척이나 꼴 보기 싫고 속상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녀석에게 미운 털이 제대로 박혀 보이곤 한다.  녀석이 학교에 가거나 귀가 시 내게 와서 꼬박 인사를 건네긴 하는데, 꼴도 보기 싫을 경우 난 얼굴도 안 보며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살고자 마음 먹었다면 절대 이래선 안 될 것 같다.  크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자식 녀석이 밉든 곱든 인사를 건넬 때면 정성껏 눈 맞춰주고, 꼬박꼬박 답례를 해야 할 당위성이 근래 생겼다.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제주도 수학여행을 위해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사망하거나 실종된 단원고 아이들 역시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다.  너무도 안타까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아이와 부모가 함께 나눈 카톡 인사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핑 돈다.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한 아이 애비의 통곡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단원고 2학년 교실의 풍경,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애초 모두가 구조됐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여전히 정확치 않은 탑승객 숫자, 우왕좌왕하며 혼란을 더욱 부추긴 채 허술한 구조작업으로 일관한 정부, 선체에 공기를 주입하고 있다는 보도도 거짓, 선체 진입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도 거짓,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대응과 조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현장으로 달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지만, 허황된 그녀의 말에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스스로는 대국민 약속이었던 공약을 줄줄이 파기하고, 대선 개입도 모자라 간첩 증거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던 국정원을 부실수사와 꼬리 자르기 신공을 통해 책임 회피에 나서고 있는 와중이면서 어찌 이런 발언이 가능한 걸까.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치안과 안전에 방점을 찍겠다며 행정안전부를 굳이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변경한 일이 있다.  결국 말장난에 불과한 셈이다.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은 완전 낙제점이다.



아울러 재난 상황에서 침착해야 할 언론은 오히려 확인되지 않은 어뷰징성 기사를 남발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간의 여과되지 않은 인터뷰를 내보내거나 타인의 고통을 광고로, 혹은 흥미거리로 전락시켜 분노를 사게 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 앞에선 직업적 윤리 따위 개나 주라 한다.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기본 책무를 무시, 승객들을 방치하고, 심지어 신고도 제때 하지 않은 채 자신들부터 서둘러 사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승무원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지 않았으며, 언론과 마찬가지로 직업적 윤리를 망각하고 있다. 

 

기본적인 재난 대응 매뉴얼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니 분명 매뉴얼은 있을 테다.  다만, 심각한 안전불감증에 사로 잡힌 우리 어른들이 이를 따르지 않고 있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장과 승무원에게 이번 참사의 원죄가 있다며 울분을 쏟아내고 있다.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들만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사고 자체는 그들의 잘못이 크다 할 수 있을지언정 이후 기가 막힐 정도로 엉성한 재난 대응 조치들이 그와 어우러지며 한편의 종합 예술(?)을 탄생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이쯤되면 오늘 아이와 나누는 인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갑게 받아주고,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야 하는 게 분명 맞겠다. 

 

세월호 안에 갇힌 채 며칠째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지 모르는 아이가 살아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눈물마저 메말랐을 단원고의 학부모들에겐 너무너무 미안하여 꺼내기조차 힘든 말이지만, 오늘아침 아이와 나누었던 인사가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너무도 소중하게 와 닿는다. 

 

부디 아이들이 생존하여 무사 귀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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