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의 초등학교들이 한창 선거 시즌이다. 후보로 출마한 아이들의 개성 넘치는 선거운동이나 유세하는 장면들을 보노라면 참 예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특하기까지 하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이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졌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마저도 전문 컨설팅이나 선거 대행 업체들이 개입하여 물을 흐려놓고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의 일이라 여기고 싶다.
ⓒ경향신문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꼬마녀석들에게도 요즘은 단연 선거가 화제다. 평소 나를 길에서 마주칠 때면 미주알고주알 이것저것 잘도 얘기해오곤 했는데, 어제는 자신들 학교의 학생회장 선거가 주된 화제거리였다.
"마늘을 전교생에게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오바마를 만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전교생에게 만원씩 드리겠습니다" "운동장을 초원으로 만들어 소 200마리를 키우고, 신선한 우유를 매일 전교생에게 제공하겠습니다"
자신의 학교 전교 회장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 중 기억나는 것 몇 개만을 추려본 것이다. 어떤가. 무척 참신하지 않은가?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 내심 흐뭇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공약이란 실현 가능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벗어난 데다가, 돈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듯한 속내가 일부 보여 씁쓸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현재 어른들의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라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이러한 아이들의 행태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어른들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선거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선거에 입후보한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기 쉽다. 그중에서도 단언컨대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대통령 아닐까 싶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자유분방하게 자라난 아이들이 많아 미래를 향한 꿈이나 장래희망도 무척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꿈을 대통령이라고 서슴없이 꼽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현재의 대통령은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까? 박 대통령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기술되어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나 개념은 나몰라라 내팽개친 채 오로지 자신만의 통치 방식을 고집해 나가고 있다. 이른바 불통정치다. 때문에 교과서의 내용과 영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초등학생들의 반짝이는 눈엔 벌써부터 거짓과 탐욕만이 그득한 사회가 비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합뉴스
더욱 우려스러운 건 대통령의 허무한 공약과 발언들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엔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외치며 간이든 쓸개든 모두 빼줄 것처럼 온갖 미사여구를 섞어가며 휘황찬란한 공약을 내놓더니,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듯 입을 슬쩍 닦은 채 대부분의 공약을 파기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초등학생들이 일종의 자신들 롤 모델이라 생각할 수 있는 대통령의 허언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건 무리도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현재의 대통령처럼 일단 선거에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테다.
부정선거 의혹과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과 관련해선 유체이탈 화법을 통해 대통령 스스로 국정최고책임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해오더니, 국민들 앞에선 또 다시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등의 허언만을 일삼고 있다. 허언뿐이라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공권력을 이용하여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대국민 겁박마저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치인들의 뻥 공약과 허언은 여전하다. 그사이 아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보이는, 이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거나 흉내내려 하고 있다. 이를 과연 아이들만의 잘못이라 해야 할까?
어른들의 못된 행태가 그대로 아이들에게 투영되는, 웃지 못할 이 현실이 그저 씁쓸하기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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