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학생 머리는 무조건 검은색?

새 날 2014. 3. 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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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모 여중에 입학한 한 아이를 동네 어귀에서 만났다.  불과 한 달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사복을 입은 채 천방지축 뛰어다니곤 해 마냥 개구장이로만 보였던 그 아이의 교복 입은 모습을 보니, 이젠 제법 의젓한 티가 역력했다.  역시나 옷이 인품의 절반(?) 쯤을 완성시키긴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전에 만났을 때와 비교해 무언가 다른 느낌 때문에 평소보다 아이를 더욱 유심히 관찰해야만 했다.  다행히 달라진 곳을 찾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옳아 머리카락의 색이 달라진 거였구나'

 

그랬다.  약간의 갈색 기운이 있던 그 아이만의 고유했던 머리카락 색이 진한 흑발로 둔갑돼 있던 것이다.  이유를 물었다.  학교 측에선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간 교문 앞에서 복장과 두발 검사를 하고 있는데, 약간의 갈색 기운이 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지목, 염색한 것 아니냐며 다짜고짜 따지더니 흔적을 지우라고 했단다.

 

엄연히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이 갖고 있는 머리카락 색이었거늘, 때문에 이를 해당 교사에게 하소연했건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외려 교사는 "너의 주장이 옳다면 뒷받침할 만한 증명서를 떼어오라"며 막무가내로 아이를 몰아붙였단다.  이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방과후 곧장 미용실을 찾아가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는 일이 전부였다.

 

아이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  학교에서 머리카락과 관련하여 규제하는 게 도대체 무어냐고..  퍼머와 염색이란다.  이 대목에서 교육 당국이나 학교 그리고 교사들의 입장도 참 안 됐지 싶은 게 자신들이 규제해놓은 규율에 의해 아이들을 솎아내고 일일이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어찌 보면 꽤나 번잡스럽고 피곤한 일일 듯도 싶은데, 스스로들 이를 자초한 셈이니 말이다.  

 

ⓒ오마이뉴스

 

아울러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퍼머와 염색은 절대 안 된다며 이를 매일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서 검사할 정도로 예민한 상황이면서 어찌하여 검은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괜찮은 걸까?  검은색 염색은 염색이 아니었던가?  염색은 분명 안 된다고 해놓고 검은색으로 염색한 사실에 대해선 아무런 관여를 않는 건 일종의 모순 아닌가?  염색 자체가 안 된다고 했으면 그 색의 종류를 떠나 모두가 안 되어야 일관성이 있으며, 정상 아닌가?

 

머리카락 색깔은 부모의 유전자에 의해 타고나는 성질로서 마치 피부색이 다르듯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으며, 염색 외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때문에 검은색이 아니라며 무조건적으로 그에 맞추라는 발상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흡사 한 편의 블랙 코메디를 보는 느낌이다.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머리카락 색이 검은색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편견 아닌가?  이는 편견을 갖지 말라고 가르쳐야 할 교육 현장에서 오히려 편견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셈 아닌가?  그렇다면 피부색도 살색(이 색의 이름은 국가인권위에서 인권 침해의 사유로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지만, 이번 한 번만 사용해야겠다. 양해 바란다)보다 희거나 검을 경우 이를 규제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다문화가정이 점차 늘며 다원화되어 가는, 다양성의 사회 속에서 머리카락 또한 울긋불긋 꼬불꼬불해지는 등 각양각색의 양상을 띠어가는 마당에 웬 시대착오적인 검은 머리에 퍼머 금지인 걸까?  

 

전 세계 사람들의 피부색과 머리색이 모두 다르듯 우리 아이들의 머리색도 자신들의 개성 마냥 모두 달라 천양지차일 텐데, 알록달록 예쁘게 꾸미고 다니면 좀 어떤가.  머리에 검은색 페인트를 부어 모두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형처럼 온통 똑같은 색깔에 같은 외양을 갖춘 것보다는 그래도 보기에 훨씬 좋지 않겠는가.

 

지금이 21세기 맞는가?  겉으로 볼 땐 학생 인권 운운하며 체벌이 없어지고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부여된 자유와 권리 때문에 온갖 학교 문제들이 양산되는 듯 떠들고들 있지만, 실상은 외려 머리색 통일과 같은 구시대적 발상으로 아이들에게 교묘한 탄압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을 획일화로 줄세우기하는 모양새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게 없는 듯싶다.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 저마다의 톡톡 튀는 개성을 살리기보단 어떻게 하면 이를 죽일까를 고심하는 듯하다.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을 논한다는 건 개가 웃을 일이며, 꿈과 끼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의 거창한 교육 방침 또한 결국 허장성세에 불과할 뿐이다.

 

굳이 어렵게 학생 인권 조례니 생활 지도 및 규율 따위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머리색이 다르다고 하여 무조건적인 검은색으로의 염색을 강요할 정도면 일선 학교의 분위기가 어떨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은 아무래도 몰개성을 통해 기존 체제에 순응케 하고, 그저 기계와 같이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생각을 지닌 인간들을 대량 양산해내어 일종의 기계 부속품의 용도로 사용하다가 폐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운용되는가 보다.  경직된 사고와 획일화된 외양을 통해 자신들이 정한 일정 기준의 인간을 길러내어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도 이에 반응치 않게 하는 순응형 인간을 대량으로 양성해내려고 작정한 듯싶다.

 

하기사 교육부장관이라고 하는 사람은 친일 왜곡 역사관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일선 학교에 침투시키려 말도 되지 않는 무리수를 두고 있고, 교육감은 자신과 정치적 노선이 달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혁신학교 홈피를 일방적으로 폐쇄시켜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등 교육 수장들이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으니 일선 학교들은 오죽할까 싶다.

 

머리색 좀 다르다고 하여 큰 일 나는 거 아니잖는가?  되레 자유로운 개성 표현을 통해 자신의 숨은 끼를 찾고, 이를 키워나가다 보면 더 나아가 국가 발전에도 일조하게 되는 셈 아닐까.  제발 아이들의 개성을 키우지는 못할 망정 짓밟는 만행 따위 저지르지 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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