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폐지 수집 노인들은 지하경제 양성화 주체가 아니다

새 날 2013. 12. 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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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온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지하경제 양성화에 따른 세수 실적이 1조9,945억원으로 목표치의 72.8%를 달성했단다.  이 추세 대로라면 올해 지하경제 양성화 세수 목표액 2조7,400억원의 97.1%에 이르리란 전망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 호실적

 

ⓒ세계일보

 

세수 확충을 위해 본격적으로 팔 걷어부친 국세청은 한 발 더 나아가 5년 단위 정기 세무조사 대상 법인을 종전 매출 5,000억원 이상에서 3,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여 대상기업을 1,100여개로 늘린 바 있다.  아울러 금융정보분석원(FIU:자금세탁 및 외화 불법유출 방지 기구)이 보유한 의심거래 보고와 2,0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를 세무조사와 체납징수에 사용할 수 있게끔 하여 2조 3,900억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하기로 했단다. 

 

온당한 세수 증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작금의 세수 정책이 기업들을 지나치게 쥐어짜고 있다는 볼멘소리 또한 이곳 저곳에서 새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60개 회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62.9%의 기업들이 이 때문에 실질적인 경영상 어려움을 토해냈으며, 자영업자들의 반발 또한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확충 계획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올해 2조 7,400억원, 2014년 5조5,000억원, 2015년 6조원, 2016년 6조3,000억원, 2017년 6조7,000억원 등 총 27조2,000억원이다.  앞으로 마른수건 짜내듯 더욱 압박을 가하겠노란 의미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지하경제 양성화의 주체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취지가 애초 복지 재원 충당을 위함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오히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떠넘겨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정부가 폐자원 업계에 대한 세금 혜택을 축소하겠단다.  구체적으로는 재활용폐자원에 대한 의제매입 세액공제율을 3년간 축소하겠다는 내용이다.

 

ⓒ세계일보


의제매입 세액공제란 세금계산서 등 구체적인 세무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더라도 매입 부가가치세를 환급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단순히 재활용업체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이 늘어나는 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알다시피 재활용업체는 폐지를 주우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전국적으로 200만명에 달하는 폐지 수집 노인들의 생활 터전이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재활용폐자원에 대한 부가가치세 공제율을 현행 5.7%에서 2.9%로 대폭 삭감하게 되면, 재활용업체가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지불하는 폐지 매입 단가 또한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원재활용연대가 예측한 내용을 들여다 보게 되면, 폐지 단가가 kg당 100원에서 20원 떨어져 폐지 수집 노인들의 한달 평균 수입이 26만원에서 4만 5천원 줄어든 21만 5천원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대한민국은 OECD 노인빈곤율 1위 국가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채 삭풍 부는 한파 속에서도 여전히 리어카나 카트에 의지해 힘겨운 하루벌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빚어졌던 박근혜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은 우리들의 녹록치 않은 미래를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취지를 망각해선 안 된다.  복지 재원 확충 마련이 애초 취지였거늘 되레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해선 안 된다.

 

지하경제의 주체는 정작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그리고 고물상과 같은 재활용업체나 이들에게 딸린 폐지 줍는 노인들이 아니다.  세수 확충을 위해서라면, 그것도 복지 재원이란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면, 더더욱 이들처럼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이들로부터 코 묻은 돈을 뜯어내려 하기보다 말 그대로 지하에 은닉된 대기업이나 부자들의 음성화된 세원을 확보하는 데에 정책의 방점을 찍어야 한다. 

 

정부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될 재활용폐자원에 대한 의제매입 세액공제율 축소를 당장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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