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을 감싸고 도는 기류가 심상치않다. 공약 파기 내지 후퇴를 통한 대국민 약속 불이행의 대형 사건과 연이어 터진 인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야 말로 총체적 난국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70%라는 놀라운 지지율을 보이며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박근혜 대통령에겐 그동안 톡톡히 재미를 봐왔던 인기몰이에도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표면상 채동욱 검찰총장 사태가 도화선이 된 듯싶다. 최근 청와대가 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며 일단의 사태가 종결된 듯 보이지만, 채 총장 찍어내기 배후에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는 정황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의혹은 여전하다.
이에 따른 후폭풍은 매서웠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다 느닷없이 '선 진상규명'을 이유로 채 총장 사표 반려라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이윽고 열린 민주당과의 3자회담은 서로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고, 급기야 추석 연휴를 앞두고선 박 대통령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 사이에 서로 날 선 언사를 주고 받는 등 공방만을 벌이게 된다. 서로 평행선을 달린 셈이다.
추석 연휴가 지난후 장외투쟁 중이던 민주당이 원내로 복귀했지만, 정국 정상화는 요원한 상황, 이번엔 정부가 발표한 기초연금안이 정국을 강타했다. 박 대통령이 내세웠던 핵심공약을 전격 후퇴하면서 기초연금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벌어진 진영 복지부장관의 사퇴 파동은 정국 난맥상에 화룡점정이 되며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 돼버렸다.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에 대해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일종의 대국민 사과라며 자체 해석을 내놨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서 사과하기를 여전히 꺼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약 파기는 일종의 국민과의 약속을 깨는 행위로서 국민들 앞에서 직접 머리를 조아려도 이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박 대통령 취임이래 지금까지 총 3회에 걸쳐 대국민 사과가 이뤄졌지만, 역시나 국민들 앞에 직접 서서 머리를 숙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기껏해야 비서실장이 대신하거나 국무회의 등의 자리를 빌려 했던 경우가 전부다. 사실상 대국민 사과라는 포장을 덧씌웠지만, 국민들의 시각에서 볼 땐 사과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행복론을 내세우며 마치 국민들만을 위해 일할 것처럼 국민들을 떠받들어오던 대통령 후보시절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너무도 꼿꼿하여 자칫 부러질 듯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 박 대통령에겐 혹시 일종의 대국민 기피증상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연루된 정권의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에, 떳떳하지 못해? 그도 아니면 국민이 우스워 보여서? 그렇지 않고서야 왜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서 사과를 구하고 머리를 숙이지 못하는 걸까.
한편 박 대통령은 30일 진영 복지부장관의 사표를 수리하며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국무위원이 비판 피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발언을 역으로 박 대통령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 싶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나 몰라라 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테고, 소통과는 거리가 먼 불통과 독선으로 야권과 일정 거리를 둔 채 담을 쌓고 있는다고 하여 이 또한 문제가 절로 풀릴 리는 절대 없다.
아울러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서 사과를 구해야 할 상황에서도 이를 애써 외면한다고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닐진대, 박 대통령은 분명히 이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피해가려고만 하는 걸까.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를 피하려다 태풍이라도 만나게 되면 어쩌려는지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의 내치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찬 행보를 보여주고 있지만, 꾸준한 지지율 관리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들을 적당히 감추어오며, 인기도를 언론에 흘리고 이의 도움을 바탕으로 나름의 국정 운영 동력을 만들어 왔다. 즉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제대로된 내치보다는 언론에 기대며 자신의 인기 관리와 같은 사안에만 신경쓰며 7개월째를 버텨오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작금의 정국 난기류는 갑작스레 발생한 사안이 분명 아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대국민 기피증상이 소통을 방해하여 왔고, 계속하여 독단적인 정치 행위를 의도하려다 보니 무리수가 발생, 동시다발적으로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결과물인 셈이다.
내치는 이렇듯 독선과 불통으로 일관하며 인기관리에만 신경 쓰면 그동안 어느 정도의 관리가 가능했고, 때가 되면 또 다시 해외 순방길에 올라 모든 상황을 잊고 화려함에 도취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국민들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에게서 더욱 환대를 받고 있는 입장인 듯하다.
박 대통령, 오는 6일부터 10일까지 APEC 정상회의에 참석차 인도네시아와 브루나이를 잇따라 방문한다. 화려한 해외순방길, 자신을 괴롭혀오던 상황들을 잠시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금의 난기류들이 애써 외면한다고 하여 해결될 사안은 분명 아니다. "피해간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본인의 언급을 상기해야 할 시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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