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붉은악마의 응원 태도, 신중치 못한 행동이다

새 날 2013. 7. 3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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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벌어졌던 2013 동아시안컵 한일전 축구시합에 대한 후폭풍이 거셉니다.  일본의 일부 응원석에선 우리를 자극하기 위해 욱일승천기를 꺼내 들었고, 이에 맞선 붉은 악마는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만한 대형 걸개그림과 플래카드를 관중석 전면에 내걸며 상호간 맞불을 놓았습니다.

 

붉은 악마의 대형 걸개그림과 응원 보이콧

 

붉은악마는 28일 한국과 일본과의 경기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의 대형 걸개 그림을 경기 도중 관중석에 내걸었습니다.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정치적인 문구로 해석될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로 하프 타임 때 이들 플래카드를 강제 철거했고, 이에 붉은 악마는 자신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축구협회의 플래카드 철거로 인해 후반전 응원을 보이콧하겠노라는 공식입장을 밝혔습니다. 

 

 

ⓒ SBS

 

항의의 표시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붉은악마가 주도해왔던 조직 응원은 후반전부터 완전히 사라져 경기장엔 침묵만이 흘렀고, 일반 관중들의 산발적인 외침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한편 한일전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경기 시작 전부터 관중석에선 이미 응원의 열기가 고조되며 과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리기 전 일본 관중석에서 몇몇 관중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꺼내 흔들다가 대회 진행 요원의 제지를 받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욱일승천기는 약 3분간 노출되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본의 과도한 반응

 

경기가 끝난 후 일본 정부가 이번 동아시안컵대회 한일전에서 붉은 악마가 관중석에 내건 플래카드에 대해 공식 유감을 표명해오며 문제로 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의 입을 통해 "국제축구연맹(FIFA)은 응원할 때 정치적 주장을 금지하고 있다.  현수막이 내걸린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일본축구협회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중이며, 만약 사실이 확인될 경우 FIFA 규약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것이다"라고 밝힌 것입니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다이나 구니야 일본 축구협회 회장 또한 이날 동아시아축구연맹에 이와 관련한 항의문을 제출했다고 밝혔으며, 일본 언론들은 붉은 악마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지극히 정치적이다.  한국의 도발을 좌시해선 안 된다"라는 취지의 보도를 연신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본 교도통신, 산케이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의 일본 언론은 붉은 악마 플래카드가 걸린 사진을 실어 이 사실을 보도했으며, 그중 교도통신은 "응원 때 정치적 주장을 금지한 FIFA 규정에 어긋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빌미를 제공하긴 하였지만, 역시 예상대로 매우 신속하면서도 조금은 억지스런 반응으로 읽히는 부분입니다.

 

반면 우리측의 반응은 다소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일본의 경우 동아시아축구연맹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정부가 직접 유감을 표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안 대한축구협회는 욱일승천기 건과 관련하여 동아시아연맹과 논의 중이라는 짤막한 입장만을 표명한 것입니다.  당장 우리 축구팬들의 항의와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으리란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던 일입니다.

 

순수한 스포츠정신 발휘 아쉬워

 

FIFA는 경기장에서의 인종차별적 행동이나 정치적인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이는 선수 뿐 아니라 관중과 경기 관계자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징계규약을 근거로 관중의 부적절한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당 규약은 구체적으로 모욕감을 주거나 정치적으로 인식되는 슬로건을 내보일 경우 형식에 구애받음 없이 그 행위 자체를 제재의 대상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붉은 악마의 해프닝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일본과의 3,4위전을 치른 후 벌인 "독도는 우리 땅" 세레머니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박종우 선수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당시 일본의 강력한 항의로 FIFA는 결국 박종우 선수에게 A매치 2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400만원이란 징계 조치를 내린 바 있습니다.

 

무릇 응원단이라 하면 경기장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 넣고, 관중들로부터는 응원의 함성을 모으는 역할이 주된 임무일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나 이순신 장군의 대형 걸개사진과 신채호 선생의 문구는 실제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손 치더라도 받아들이는 상대와 입장에 따라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상대가 일본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논란이 야기될 것이란 건 불보듯 뻔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일본이 먼저 욱일승천기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중석의 일부를 덮을 만큼 커다란 플래카드를 준비했다는 건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한 행동이기에 욱일승천기의 등장과는 별개인 것이며, 때문에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노라는 설명은 핑계에 불과해 보일 뿐입니다.  게다가 플래카드 철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후반전에서의 응원 보이콧이란 행동은, 굳이 스포츠정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공식 응원단으로서의 처신으로선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이라 생각됩니다. 

 

이 부분에서 "일본이 먼저 욱일승천기를 꺼내들었으니, 우리의 걸개그림과 플래카드도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항변하는 분들도 일부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경기장 내에선 오로지 스포츠 정신에 입각하여 처신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문제로 삼고 있는 것처럼 문제가 되었던 부분에 대해선 경기후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의해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그들이 정치적인 행위를 했다고 하여 똑같은 우를 범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당장 일본은 이번 붉은 악마의 처신에 대해 정부까지 직접 나서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항의가 무섭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번 붉은 악마의 응원 논란 건이 자칫 제2의 박종우 선수 사건으로 비화될 여지가 충분히 엿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붉은 악마는 이번 사건을 기회로 반드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스포츠에서마저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정치색이 투영되어선 안 될 노릇입니다.  대한민국 축구 공식 응원단의 행동 하나하나가 축구팬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일본이란 나라가 밉고 치사하다 하더라도 그들과 똑같이 행동한다는 건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품위있는 응원문화를 선보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붉은 악마의 이성을 잃은 행동으로 인해 후반전 응원은 실종되었고, 그 때문인지 경기마저 후반전 막판에 한 골을 내주며 경기는 2대1로 역전 당하는 최악의 결과를 빚었습니다.  한일전의 민감한 정도를 감안할 때 만일 붉은 악마가 평상심을 되찾아 후반전에서 정상적인 응원전을 펼쳐 선수들의 기를 북돋웠더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시합이 아니었는가 하여 더욱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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