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왜 어른들 잘못을 아이들에게 떠넘기나

새 날 2013. 6. 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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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학교를 다녔던 우린, 교실에서 선풍기 따위 구경도 못 해본 세대다.  당시 가정용 에어컨은 굉장한 부잣집에서나 사용하던 일종의 사치재였기에 평소 볼 수조차 없었다.  찜통 교실?  여름철 교실은 당연히 더워야 했고, 겨울철엔 조개탄 난로를 땠기에 여름철에 비하면 그나마 견딜만 한 정도였다. 

 

20세기 교실 모습은 어땠을까

 

당시 학교의 시설이란 건 으레 열악해야 하며, 때문에 여름철 찜통더위는 학생들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에 따르는 불만 따위 물론 없었으며 오히려 학생이라면 누구나 응당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속 교실 풍경

 

때문에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웃통을 벗은 채 속옷차림으로 수업을 받도록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6-70명이 바글거리는 콩나물 시루 같기만 한 교실에서의 푹푹 찌는 한여름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고육지책 중 하나였다.  물론 마음씨 좋은 선생님의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었고, 웬 만한 선생님들, 아이들이 덥건 말건 크게 개의치 않아하는 눈치였다.  속옷차림의 수업은 이제 더 이상 보기 힘든 학교 풍경의 모습 아닐런지.

 

때는 바야흐로 21세기로 넘어오며 문명과 기술의 눈부신 발달이 있었고, 그에 걸맞게 우리 경제의 볼륨도 제법 커졌다.  에어컨은 이제 과시를 위한 사치재가 아닌 생활 필수재가 되었다.  현재 각급 학교엔 첨단 냉난방 시스템이 설치되어 가동 중에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 때문에 에어컨 가동 없이 이 계절을 보낸다는 건 그곳이 가정이건 회사건 학교이건 간에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21세기에 웬 찜통교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마다 설치된 첨단 냉난방 제품들을 가동할 수 없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찜통더위를 겪고 있단다.  6월초임에도 불구하고 때마침 기온이란 녀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신 치솟고 있다.  20세기엔 사용하고 싶어도 제품 자체가 없어 불가항력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풍요로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교실 속 찜통더위를 겪게 되는 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표면적인 이유, 사상 최악의 전력난과 비싼 전기요금 탓이다.  때이른 불볕더위에 예비전력이 위태위태해지며 연일 전력 경보가 발령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선 학교 또한 정부의 에너지 절약 시책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파고들면 양상은 보다 복잡해진다.  화석연료 고갈을 목전에 둔 우리 앞에 떨어진 당면 과제, 기존 에너지 정책의 변화와 에너지 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알리는 과도기적 경고 메시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당장의 표면적 문제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자.  교육용 전기료는 2009년부터 해마다 인상해 와 최근 5년간 인상률이 무려 30.1%에 달한다.  교육용 전기요금은 2012년 12월 기준 1㎾h당 판매 단가가 108.9원으로, 92.8원인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오히려 비싸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 입장에서는 다른 예산 집행도 버거운 상황에서 비싼 전기요금마저 떠안게 되어 학교 운영에 굉장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교총이 지난 4월15일부터 한 달 간 전국 1058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용전기료 등 공공요금 실태조사"에서도 그와 같은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다.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학교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아이들에게까지 직접적인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학교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어른들의 책임, 아이들에게 전가시키지 말아야

 

이 모든 원인, 결국 어른들에게 있다.  원전 비리와 수요 예측 실패로 빚어진 전력 대란 위기, 이어지는 전기요금의 잇따른 인상, 잘못은 어른들이 모두 저질러놓고 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시켜야만 하는 걸까?  도대체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무더위 속에서도 찜통교실에서 공부하도록 방치해야만 하는 걸까? 

 

우리 아이들에겐 잘못이 없다.  어른들 잘못이다.  차라리 이렇게 하자.  전력 수급을 총괄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그리고 한전 등의 건물과 사무실에선 에어컨은 물론이거니와 선풍기를 포함한 그 어떤 냉방시설조차 가동을 중단시킨 채 직원들을 근무토록 하고, 이도 부족할 경우 모든 공공 건물과 공직자들에게까지 확산시켜 사무실 냉방장치의 전원을 완전 차단시켜 버리자.  물론 일은 해야 할 테니 전등불은 그냥 놔두자.

 

두 가지 효과를 노려봄직하다. 

 

첫째, 이로부터 얻어지는 여유 전력을 각급 학교에 무상으로 공급하게 될 경우 최소한 학교의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아이들이 찜통더위 속에서 공부하는 일 따위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다. 

 

둘째, 그들 스스로 찜통더위를 몸소 체험해봄으로써 아이들이 겪었을 고충을 일부분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흘리는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자연스레 자신들의 고충 해결을 위한 철저한 직무 수행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전기요금 체계를 당장 뜯어고쳐 교육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하, 학교 운영에 따르는 부담감을 확 떨쳐내도록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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