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언론의 자살 보도 행태 이젠 바뀌어야 한다

새 날 2013. 6. 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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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손호영 씨 여자친구의 자살 사건 이후 손호영 씨 본인마저 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손씨는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이후 이를 따라하려는 모방 자살이 줄을 잇고 있다.  4일에도 서울 양천구의 한 의원이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되었다.

 

베르테르 효과 부추기는 언론들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번개탄 자살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각도로 분석하여 내놓고 있다.  다른 방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최소화할 수 있으리란 자살 시도자들의 막연한 믿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란 분석이 대세다.  때문에 이를 줄이기 위해선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번개탄의 구입 절차를 좀 더 복잡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물리적이며 표면적인 원인으로서는 이러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번개탄 자살의 근저엔 보다 근본적인 다른 이유가 깔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살 방법으로서의 활용이 잦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활용품인 번개탄의 구입 절차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 또한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여 노끈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경우 같은 이유 때문에 노끈 구입 또한 아무나 못 하게 할 참인가.  

 

 

그렇다면 왜 모방 자살이 자꾸만 증가하고 있는 것일까?  일명 베르테르 효과다.  언론사들이 유명인과 관련한 자살 보도를 경쟁적으로 취재하여 올리게 되다 보니, 보다 자극적인 제목이 달릴 수밖에 없고, 또한 자살의 구체적인 방법과 장소까지 상세하게 묘사하다 보니 보는 이들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게 하는, 악순환의 구조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는 부쩍 늘어난 인터넷 매체와 기자들의 양적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즉 자극적인 기사는 일종의 생존경쟁의 한 양태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무수한 기사들 중 자신의 기사가 도태되지 않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한때 자살공화국이었던 핀란드, 지금은?

 

이와 관련하여 우리보다 앞선 경험을 했던 핀란드의 경우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한때 국가 경쟁력마저 위협받을 정도로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어 왔던 핀란드, 10년 이상 지속된 자살 예방 프로젝트가 커다란 효과를 불러오며 세계 2위였던 자살률이 13위까지 떨어져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대표적인 핀란드식 자살예방 프로그램은 얼마전 부산 등 일부 지자체에서의 도입이 검토된 바 있는 심리적 부검제도다.  이 제도가 자살 예방에 커다란 효과가 있고, 핀란드의 현재 결과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핀란드 언론들의 자살과 관련한 보도 행태가 만일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이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개인들뿐 아니라 언론들 또한 자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극도로 꺼린다.  아울러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과 구체적인 자살 방법 등에 대한 보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개인의 죽음과 관련한 보도에서도 자살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핀란드 언론인들 사이에 정해진 권고사항이자 보도 방침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좋은 제도가 결합하여 상승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핀란드의 자살률, 20년만에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심리적 부검제도 등의 자살예방 종합대책과 사회의 우호적 분위기 및 구성원들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힘을 발휘한 덕분이다.  반대로 같은 시기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4배 넘게 증가하며 OECD 중 최악의 자살국가란 오명을 뒤집어 썼다.  핀란드와 서로 자리를 맞바꾼 셈이다.

 

언론의 보도행태, 이젠 바뀌어야 한다

 

핀란드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무엇보다 우리 언론들의 자살 관련 보도 행태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하고 싶다.  언론들의 인터넷에 대한 활용과 의존 비중이 커져가면서 실시간으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최대한 많은 접속을 유도하여 단시간 내 관심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이들의 지상과제, 때문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벌이는, 보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 뽑기 같은 관행은 애교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털사이트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용자들의 페이지 뷰 늘리기를 위한 수단과 방법엔 너나 할 것 없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언론사들의 행태와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과 관련한 자살 사건이 터질 경우 이들은 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스스로 바꿔 메인을 장식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다.  특히 아직 정신적으로 덜 여문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자살 관련 보도지침 같은 게 없는 것일까?  물론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기준을 마련한 자살 보도 권고기준이 있긴 하다. 

 

 

문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에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인터넷 매체를 포함한 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오는 9월에 공표할 방침이란다.  아울러 자살 관련 보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이를 지키지 않은 언론사를 공개하는 등 사후 관리에도 힘쓰겠다는 계획이란다.  

 

이번엔 과연 잘 지켜질까?  그러나 이 또한 미지수다.  작금의 보도행태는 엄청난 숫자의 언론매체와 기자들간 서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필사적인 생존경쟁이란 물리적 틀 안에서의 필연적 산물이라 보여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물리적 환경의 개선 없이, 아울러 법적 강제 없이, 자발적인 규제를 바란다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결국 언론인들의 자살 예방과 관련한 의지의 문제인데, 강제적인 법적 제약 없이 우리 언론인들을 순순이 믿고 맡기기엔 무언가 찜찜하다.  이제껏 언론들의 행태를 비쳐볼 때 오히려 우리에겐 자율보다 강제적인 규제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언론이란 사회적 공기가 책임감 없이 행동할 때 사회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쳐 올 수 있는지 우린 여실히 봐왔기 때문이다. 

 

자살에 관한 한 차라리 사전 심의를 거친 보도만을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자살 예방 방지 노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핀란드의 예에서 보았듯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 없이 성공하기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언론들이 자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또 자살 방법이나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며, 자살 관련 보도 숫자를 획기적으로 줄여나간다면 우리의 자살률도 핀란드의 경우처럼 큰 폭으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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