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아웃사이더에 대한 관심 촉발시키는 책 '한 시간만 그 방에'

새 날 2018. 8. 1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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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른이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지 2주가 훌쩍 지났다. 그가 정확히 무슨 직무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직장이 관공서임은 분명하다. 비에른은 이곳의 한 사무실에 소속돼 있다. 그는 스스로를 대단히 유능한 직원이라 자평한다. 아울러 옆 직원 호칸처럼 일하는 척만 하는 사람을 경멸하고 있으며, 그 맞은편에 앉은 안처럼 여기저기 나서기 좋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부류의 사람들 역시 무척 질색하는 입장이다.


그는 그만의 주도면밀한 작업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업무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료들과 불필요하게 어울리는 일 따위는 일절 회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사무실이 위치한 4층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사이에 작은 방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방 가운데엔 책상 하나가 위치해 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사무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으나 모든 게 깔끔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돈돼 있었다. 비에른은 이 방에만 오면 왠지 편안해지고 마음이 안정되는 까닭에 일하는 틈틈이 찾게 되는데...  


스웨덴의 대표 배우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요나스 칼손의 소설 '한 시간만 그 방에'는 모든 측면에서 철두철미한 성공 지향의 인물 비에른이 이직 후 자신에게만 보인다는 조그만 방 하나를 놓고 직장 동료들과 진실 게임을 벌이는 등 사내에서 벌어지는 우습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황당한 에피소드들을 그려나간다. 그러니까 사회나 회사가 그어놓은 테두리 바깥에 위치한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소설이다.



안타깝게도 비에른이 자신만의 아지트라고 여겨오던 그 작은 사무실은 오로지 그에게만 보이는 공간이다. 다른 동료들에게는 그저 벽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심리적 안정감을 누릴 수 있었던 덕분에 이곳을 수차례 드나들었던 비에른이지만, 때문에 다른 동료 직원들에게 그의 이러한 행위는 그저 이상한 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에른이 새 직장에서 맺던 동료들과의 관계 방식은 조금 어이가 없다. 모든 게 자기중심적인 데다가 시쳇말로 자뻑이 너무 심해 조금은 밥맛이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심지어 부서장 직위조차 조만간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둥 사내에서 자신이 가장 유능한 사람이라 단정 짓고, 동료들과의 시시콜콜한 대화마저도 경멸하며 회피하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자신만의 작업체계와 시간계획을 엄정하게 지키는 등 일처리만은 철저한 것으로 보이지만, 왠지 어리숙함을 과대포장하려는 듯한 그의 행태는 영 어설프기만 하다.



허세 아닐까? 그래서 무언가 짠하다. 특히 동료들이 일방적으로 그를 미친놈 취급하고 종국엔 부서장인 칼까지 직접 나서 그에게 정신과를 알선해줄 때는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이 때까지만 해도 비에른은 실제로 정신 장애를 앓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허나 이야기는 얼마 후 비에른의 자뻑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님을 실력으로 입증하게 되고, 정신 장애를 의심 받으며 궁지에 몰리던 그가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회사를 살린 일약 기린아로 떠오르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자 비에른만의 작은 방에 얽힌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헷갈림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이후 진실게임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평범하고 무난하기 짝이 없는 주류에 속하는 사회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비에른의 행태가 조금은 별종이긴 할 테다. 학교에서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 하고 조금은 다른 부류의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고, 사회로 넘어와서는 무난한 동료이길 바라는 조직원들에게 별종은 다름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 틀림이라며 직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공간에 집착하는 비에른이 유일하게 마음놓고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는 다름 아닌 그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주류의 입장에서는 비주류의 행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 리 만무하다. 그가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절대로 허락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그를 미쳤다며 정신병자로 몰아가기 바쁘다. 주류가 아닌 이상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출중한 성과를 보이더라도 잠깐 동안의 헷갈림 혹은 혼돈 따위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아웃사이더(요즘 초등학생들은 이를 줄여 '앗싸'라고 칭한다)가 딛고 서 있을 공간일랑 사실상 많지가 않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근래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한다며 어른들이 한 마디씩 툭툭 내뱉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화장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알고 보면 조금 씁쓸하다. 다름 아닌 '앗싸'(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싸'(인사이더)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른들이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놓고 아이들더러 뭐라 하는 격 아닌가. 아웃사이더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이 작은 방을 자꾸만 찾다가도 어느 순간 이마저도 못 하게 하니 영원히 숨어들 밖에..



저자  요나스 칼손

역자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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