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심리 묘사가 섬세한 스릴러 소설 '굿 미 배드 미'

새 날 2018. 8. 1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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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경찰에 연쇄살인 사건이 접수된다. 모두 9명의 아동이 끔찍한 방식으로 살해된 사건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숨진 아동들은 죄다 남아였다. 이 사건은 자신의 엄마가 보호시설에 수용된 여성들의 어린 자녀 9명을 차례로 납치, 학대하고 살해하는 행각을 직접 지켜보면서 이를 돕거나 사후 처리를 도맡아해온 딸 애니의 신고로 세상에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엄마는 체포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미성년자인 애니에겐 엄마 외의 보호자가 없어 그녀의 심리 치료를 담당하게 된 상담사 마이크의 가정에 당분간 맡겨진 채 심신 보호와 심리 회복을 돕게 된다.


애니는 '밀리'라는 새 이름을 부여 받음과 동시에 학교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새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하지만 그녀의 심신을 지배해온 엄마의 영향력은 여전히 밀리, 아니 애니 안에 또아리를 뜬 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불쑥불쑥 드러내려고 하던 터다. 밀리는 과연 엄마의 영향력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아들의 가출이 빚은 과도한 집착이 남아에 대한 연쇄적인 학대와 살인으로 이어지게 했고, 딸이라는 이유로 모진 학대를 당함과 동시에 범죄 행각을 몸소 지켜보거나 때로는 직접 이를 도운 탓에 숨진 아이들에 대한 연민 및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해 하다가 경찰에 신고하게 된 애니가 그녀를 보호하고 성장을 돕기 위해 나선 한 심리상담사의 가정에서 겪게 되는 선과 악 사이의 힘겨운 줄다리기를 그린 스릴러 심리 소설이다.


밀리는 아픈 과거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에 자리잡은 애니라는 인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그녀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곤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애니는 엄마로부터 영원히 자유롭지 못 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엄마에 의해 숨져간 아이들, 특히 자신과 알고 지내던 대니얼을 생각하면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녀를 해코지하거나 상황이 뒤틀릴 경우 엄마가 지닌 것과 같은 냉혹한 성향이 애니의 몸을 빌려 공공연히 밖으로 표출되곤 한다.



밀리의 보호를 자처한 심리상담사 마이크의 가정에는 밀리와 동년배의 딸 피비가 있었는데,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질투심과 이기심이 유독 강한 데다가 동시에 그맘때의 치기 어린 장난기까지 발동하면서 밀리를 향한 짓궂은 행위가 연일 지속된다. 그럴 때마다 겉으로는 결코 내색을 하지 않던 밀리,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면에 숨겨진 굶주린 성난 늑대가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꼴이었다.


비록 밀리와 피비 사이에서 소소한 신경전이 벌어지긴 해도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마이크의 가정, 그와 아내의 친절하면서도 극진한 돌봄 덕분에 외견상 밀리는 일정 수준의 안정감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녀의 내면으로는 여전히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잔혹한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틈만 나면 고개를 불쑥 내밀려고 하는 탓에 심리 상태는 혼돈 상황에서 늘 자유롭지 못 하다.



이는 겉으로의 표현과 속내가 전혀 다른 양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처럼 흡사 두 개의 전혀 다른 인격을 갖춘 인물이 한 몸 안에 이들 모두를 품고 있는 듯이 그려진다. 아울러 무언가 그녀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마다 신체 은밀한 곳의 자해를 통해 흔적을 남기거나 이를 확인하는 모습은 엄마의 잔혹한 사이코패스 DNA가 건재하며, 그로 인해 심장이 심하게 뒤틀려 있음을 상징하는 듯싶다. 이렇듯 순수한 10대 소녀의 면모를 보이다가도 영락 없는 영악한 어른의 형상을 드러낼 때면 마치 악마를 보는 듯해 혀를 절로 내두르게 된다. 일상 속에서 문득 드러나는 밀리, 아니 애니의 잔혹성은 섬뜩함 그 자체다.


엄마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데다가 학대 및 살인이라는 끔찍한 환경 아래에서 성장해 왔음에도 이성적으로는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보통사람들처럼 사랑과 관심 속에서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15세 소녀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혼란을 겪는 과정은 왠지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안쓰럽기 짝이 없다.



저자  알리 랜드

역자  공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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