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안경쓰는 아나운서, 화장하는 초등학생

새 날 2018. 7. 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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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여성들 사이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탈코르셋'이란 사회적으로 강요돼온 여성성을 거부하자는 움직임이다. 이를테면 렌즈나 짙은 화장, 긴 생머리, 그리고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하지 않는 일체의 행위를 일컫는다. 실제로 렌즈 대신 그동안 금기시돼온 안경을 착용하고 방송에 나선 아나운서가 있는가 하면, ‘나는 화장도 안 하고, 브래지어도 차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며 인증샷을 남긴 이들이 있는 등 다양한 양태와 경로로 확산 중에 있다. 자발적이 아닌 강요된 인위적 아름다움을 향해 여성들이 공개적인 거부 및 선전포고에 나선 셈이다. 


아름다움을 좇고 이를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 가운데 하나다. 아울러 아름다움을 탐하는 건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 행위가 꽃을 피우고 있는 현실이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심지어 아름다움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적도 있다. 과거 로마의 귀족들은 외모를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 납 성분이 들어 있는 화장품을 얼굴 등에 바르곤 했다. 이의 대가는 끔찍했다. 얼굴 피부가 훼손되고 내장까지 손상되는 등 목숨까지 위태로울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과거 인도 사회에는 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코를 베는 형벌이 존재했으며, 비슷한 시기 이집트와 로마에서는 검투 열기가 한창 고조됐던 까닭에 결투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전사들이 즐비했다. 당시 성형수술은 범죄자나 검투에서 패배한 자들의 명예를 재건시키는 용도로 활용됐다. 아울러 근대에 이르러선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이들에게 새 얼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그것은 의학적 쓰임새보다는 주로 미용을 위한 용도로 변질된 경향이 크다. 의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에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부여받았다며 많은 현대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오로지 아름다워지고 싶노라는 욕망에 온몸을 의지한 채 기꺼이 이 수술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MBC 영상 캡쳐


하이힐은 높은 굽으로 인해 늘씬해 보이는 효과뿐 아니라 상체를 뒤로 젖히게 하여 가슴을 도드라지게 하고 반대로 배는 쏙 들어간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여성들의 패션 잇템이 된 이유다. 하지만 하이힐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한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게끔 만들어진 탓에 발가락을 혹사시킨다. 덕분에 각종 발 관련 질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척추에도 심각한 이상 증상을 유발한다. 내장 기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현대 여성들에게 있어 이 하이힐은 패션의 끝판왕이자 일종의 자존심으로 대접받고 있다. 치아의 미백 효과에 뛰어나다는 속설로 인해 소변으로 입을 헹구던 시절이 있었을 만큼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초등학생들조차 너 나 할 것 없이 화장을 한다고 하니 말이다. 기초부터 색조화장까지 어른들이 하는 건 고스란히 흉내를 낸다. 녹색소비자연대의 2016년 청소년 화장품 사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24.2%가량이 화장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이 앗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가 아닌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가 되고 싶어 유행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뻐지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 이러한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성인 여성들은 탈코르셋 운동을 벌이며 강요된 여성성을 거부하겠노라고 나선 상황에서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10대 아이들은 오히려 여성스러워지거나 예뻐지고 싶다며 어른 흉내를 내느라 아우성인 걸 보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 같다. 아름다움의 추구가 중세시대처럼 죄로 취급받고 있지 않은 이상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화장을 막연히 어른들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며 이를 탓할 수만은 없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발현이 자발적이라기보다 사회적 시선에 의한, 타자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물이라면 아주 조금은 씁쓸할 것 같다. 


타인이 기대하는 욕망 그리고 시선, 즉 일종의 사회적 강요에 의해 규정되고 이를 따르게 하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라면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부여 받은 게 아니라 되레 상실하게 된 결과와 진배없는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탈코르셋 운동을 펼치며 강요된 여성다움을 과감히 떨쳐내려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상실된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원복시키려는 매우 건강한 몸짓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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