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멜라니아 여사의 의상은 왜 비난 받나

새 날 2018. 6. 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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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이민자 아동 수용시설을 방문하는 길에 입은 의상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녀가 입은 재킷 뒷면에 새겨진 문구 때문이다. 멜라니아가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텍사스 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당시의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됐는데, 재킷의 뒷면에는 "I REALLY DON'T CARE, DO U?"이라는 문구가 그라피티 스타일의 글씨로 큼지막하면서도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이는 우리 말로 "난 신경 안 써" 혹은 "난 상관 안 해" 등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안팎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자초했던 불법 이민자 부모 아동 격리 수용 정책을 전격 철회한 다음날 빚어진 사안이다. 물론 그녀는 아무런 의미 없이 걸친 의상일 뿐이라며 항변하고 나섰다. 실제로 멜라니아 여사의 대변인은 취재진에게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그저 재킷일 뿐, 여기에 숨겨진 메시지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멜라니아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정책 철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노라는 우호적인 미국 언론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위는 의구심투성이인 터라 비난 여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멜라니아는 전직 모델 출신으로서 어느 누구보다 의상을 활용한 메시지 전달에 능통할 뿐 아니라 그만큼 의상의 위상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일 테다. 더구나 그녀의 사회적 지위는 G1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아닌가. 그녀는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까닭에 일거수일투족이 항상 눈에 잘 띄는 위치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러한 인물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의상을 갖춰 입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멜라니아가 그날 입은 재킷의 브랜드가 '자라'였다는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하는 요소다. 미국 영부인이 입은 의상 치고는 가격이 너무 저렴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연이든 그렇지 않든, 트럼프의 이민자 부모와 아동을 격리 수용하려던 비인도적 정책, 그리고 남미에서 미성년 노동력을 이용하는 등 아동 착취의 대명사격으로 알려진 '자라' 브랜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접점을 찾은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즉, 고통 받고 있는 이민자 아동 수용시설의 아이들 앞에서 아동 착취로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의 옷을 입은 채 "난 상관 안 해" 라며 큼지막한 문구를 드러내놓은 멜라니아의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매우 적절치 못한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이번 행위가 의도적인 데다가 고도로 계산된 것이라면 대중들로부터의 거센 비난은 피할 수 없다.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혹여 그녀의 행위가 자신의 주장처럼 사전에 계획된 결과물이 아닌,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걸친 의상이라고 한다 해도 역시나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상의 경우 에티켓이 요구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갓집에 갈 때 검은 색상의 의복을 갖춰 입는다거나 예식장에서는 최대한 점잖은 복장을 입고, 입사를 위한 면접 자리에서는 으레 정장을 입곤 한다. 즉, 격식의 상당 부분을 의상이 담당한다.


이는 법규나 제도처럼 명문화된 건 아니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기꺼이 수긍하고 따르는 종류의 것이다. 일종의 에티켓이기 때문이다. 에티켓이란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예절이다. 이를 지킴으로써 모두가 편해질 수 있다. 반대로 에티켓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게 됨은 물론, 공동체 구성원 전체로 하여금 불편을 끼치게 하기 십상이다. 멜라니아가 특별히 의도한 의상이 아니었더라도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건 바로 이러한 에티켓의 결여 탓이다. 


ⓒ뉴시스


지난 2014년 4월 25일,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오바마는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상대 국가의 재난 앞에서 예를 갖추고 있었으나 정작 우리 대통령은 하늘색 재킷을 입은 채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3개월이 흐른 뒤인 7월 25일에는 마스조에 요이치 일본 도쿄지사가 한국을 방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접견했다. 그런데 일본 도쿄지사의 오른쪽 가슴 위로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색 리본이 선명하였으나 정작 우리 대통령의 의상 어디에도 이 노란 리본은 없었다. 


ⓒSBS


주객이 전도됐음은 물론,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격식으로부터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던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시민들로부터 무수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같은 상황에서라면 누구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아주 기본적인 예의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까닭이다. 오늘날 박 전 대통령이 온갖 비리 혐의로 구속된 채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된 운명도 따지고 보면 이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멜라니아가 어떤 의도로 논란이 된 의상을 입었는지는 본인과 그 측근만이 알 수 있는 사안일 테다. 다만 정황상 매우 계산적인 결과물일 공산이 커 보이며,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가 당시 입었던 그 해괴망측한 의상은 대중들의 비난을 결코 피해갈 수 없게 한다. 지난해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로 피해를 입은 텍사스 주의 재난 현장을 방문하러 가면서 굽이 높고 얇은 '스틸레토 힐'을 신었던 사례처럼 때와 장소, 그리고 격식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의상으로 모든 사람들의 심경을 몹시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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