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소확행'이 뭐 별 건가요

새 날 2018. 1. 1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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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하던 겨울철 공기가 언젠가부터 미세먼지로 인해 더욱 탁하게 다가온다. 어느덧 연례 행사가 돼버린 것이다. 요 며칠 동안은 그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마지 못해 마스크를 착용, 맑고 파랗던 대기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를 슬쩍 헤아려본다. 


내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이를 내쉬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아울러 산책로에서 산책을 하고 운동하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했다. 등산은 또 어떤가. 버스로 몇 정류장만 가면 바로 가능할 정도로 손에 잡힐 듯 산이 지척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하늘을 뿌옇게 뒤덮은 미세먼지는 이러한 평범하기 짝이 없던 일상을 모두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숨 쉬는 일이 갑자기 거북해졌으며, 운동은 고사하고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일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TV에서는 미세먼지로 인해 평소 사람이 많이 몰리던 한강이며 산이며 거리 곳곳이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고 연신 떠들어댄다. 이들 주변에서 영업을 하던 자영업자들의 타격도 이만저만이 아닐 듯싶다. 그러더니 어제는 모처럼 미세먼지가 걷혔다.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산책로로 들어섰다. 도대체 얼마만의 운동인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유독 힘이 더 든 것처럼 느껴진다. 이를 악물고 달리면서 욕을 내뱉어볼까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운동을 하면서 욕설을 내뱉으면 운동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며칠 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힘에 부친다는 방증이자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난 아직도 철이 덜 들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근래 '소확행' 트렌드가 화두다. 이는 비록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언론과 기업들이 더 난리다. 어떡하든 이의 유행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허황된 꿈을 좇는 대신 일상적인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는 '소확행'의 참의미를 왜곡시키기에 충분하다. 


ⓒ중앙일보


역설적이게도 최근 얄밉기 짝이 없는 이 미세먼지가 작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내게 일깨우고 있다. 미세먼지 없는 야외에서 걷거나 뛰고 산책하며 일상을 소일할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아니 이제는 왠지 마스크 착용 없이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지 않은가? 소확행, 사실 그게 뭐 별 건가. 


요즘 가상화폐 광풍이 불고 있다. 주변엔 이로 인해 웃거나 우는 사람들 천지다. 심지어 병적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난 투자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할 수 없는 처지다. 이에 투자하여 떼돈을 벌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고민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고, 반대로 잃은 사람들 역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 그 자체로 난 행복하다. 소확행이 뭐 별 건가. 



최근 좀 오래된 일본 영화 '심야식당'을 뒤늦게 봤다. '카레라이스' 에피소드에서 켄조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아내를 잃었으나 그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는 아내의 유골 대신 그녀가 살아 생전 가장 행복해 하던 곳의 흙을 유골함에 담아 보관한다. 캔조의 마음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간접경험만으로도 짐작되고도 남는다. 난 아내와 좋아하는 곳을 다녀올 수 있고, 늘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소확행이 뭐 별 건가. 


비록 말도 안 되는 조악한 수준의 글이지만, 그래도 매일 내 블로그에 이렇게 아무 글이나 적으며 흔적을 남기고, 시간이 부족하여 밤 늦은 시각 졸린 눈 비벼가며 관람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영화를 보고 함께 웃거나 울며 감성을 공유할 수 있어 난 너무 행복하다. 혹자는 이 '소확행'을 정신승리의 일종이라며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들 또 어떠한가, 나만 좋으면 그만인 것을.. 소확행, 그게 뭐 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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