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기레기'라고 하여 폭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새 날 2017. 12. 1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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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취재하던 청와대 사진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이는 누가 보아도 과잉 대응에 나선 중국이 욕을 얻어 먹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의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수의 네티즌들이 폭행 가해자인 중국을 비난하기 보다 오히려 피해자인 우리 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온라인상에는 '기레기가 그러면 그렇지'부터 '기레기가 맞아서 속이 시원하다' '도대체 얼마나 유난을 떨었으면, 때리기까지 하겠냐'는 등의 온갖 비아냥과 폭언이 쏟아졌다.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게시판에는 ‘해외순방 기자단 해체 요구’ 등의 글까지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곰곰이 헤아려보았다. 물론 짚이는 게 있다. 야당을 비롯하여 일부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외교에 대해 부실한 공항 영접 등 중국 측의 홀대를 빌미로 '굴욕외교'니 '외교참사' 등의 격앙된 표현을 사용해가며 무조건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게다가 진정한 저널리즘은 사라지고 언론의 공익성과 책임성마저 망각한 기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젠가부터 대중들은 이들을 향해 '기레기'라는 호칭을 부여해오고 있다는 사실도 문득 떠오른다. 


대중들의 눈밖에 난 이른바 '기레기'들이 얼마 전,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당시 백악관에서 과잉 취재 활동을 벌이다가 논란으로 불거져 세계적인 망신을 초래했던 사례도 이번 사태의 빌미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짐작컨대 앞서 경험했던 요소들로 인해 일부 네티즌들의 객관적인 사고와 판단 능력이 흐려졌던 게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가 야당 그리고 그들과 한 몸으로 여겨질 정도로 편향된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는 언론에 의해 폄훼되는 상황을 그저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려는 충정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사안만큼은 이른바 '기레기'들의 취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 중국 당국이 실수하고 잘못한 게 분명해 보인다. 이는 외교적 결례를 넘어 심각한 국가적 수모에 가까웠던 결과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성과에 누가 될까 봐 중국이 잘못한 사안을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하고, 이를 되레 우리 기자들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건 지나친 자의적 해석과 그에 따른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된 결과물로 읽힌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에 대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폭행 사건은 청와대 경호처와 중국 공안 간 사전 협의에 의한 정상적 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사실임이 밝혀지고 있다. 폭행을 불러올 정도의 과잉 취재는 없었노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 측 경호원들의 과잉 대응과 청와대 경호처의 대응 미숙이 사건을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경호처가 행사 시작 전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 거리 이내로 기자들이 들어 오지 않는 이상 취재진의 활동을 보장해 달라며 중국 공안 당국에 이를 요청하였고 공안 측도 동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연합뉴스


폭행을 당한 기자 두 명 역시 청와대출입사진기자단을 대표해 문재인 대통령을 현장 취재 중이었던 터라 백악관에서처럼 결코 과열 경쟁을 벌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측 경호원들은 사진기자들과 동행하던 청와대 직원들이 신분을 밝히며 기자들이 취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지하면서 일방적으로 폭행을 가해온 것이다. 


외신들도 이번 사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이 해외 언론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으면서 대외관계에 또다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는 진단이 주류를 이룬다. 뉴욕타임스는 “10명 이상의 중국 보안요원이 한국 사진기자들을 폭행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를 망쳤다”고 보도하였고, 과거 비판적 서방언론의 취재를 금지했던 사실도 재차 언급하고 나섰다. 


영국 가디언은 2년 전 중국 인권운동가 푸즈창의 재판 과정에서 기자와 외교관을 중국 공안이 폭행했던 사례와 이번 사건이 흡사하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사과나 유감, 재발 방지 약속조차 없다. "누군가 다쳤다면 당연히 관심을 표시한다"고 밝힌 게 그들이 우리에게 보인 성의 표현의 전부다. 중국은 세계 언론자유 순위 최하위권에 속한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언론자유 지수 조사에서 중국은 176위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이번 기자 폭행 건은 언론에 대한 인식과 관념이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 정도로 희박한 중국이라는 국가에서는 통상적으로 빚어질 수 있는 사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미국이 아닌, 그렇다고 하여 일본도 아닌, 언제까지나 중국이기에 이런 류의 사건이 불거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 기자들이 저널리즘을 상실한 '기레기'이기에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해도 전적으로 기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자랑해마지않던 집단지성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말끝마다 온통 '기레기' '기레기' 타령을 하더니, 그리고 평소 무조건 깔아뭉개고 보는 저속한 표현을 입버릇처럼 남발하더니 어느새 냉철해져야 할 이성마저도 혹시 둔감해져버린 건 아닐까? 무엇보다 현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을 다스리려는 목적으로, 아울러 '기레기'라는 이유만으로, 폭력 행사마저 정당화시키려는 그들의 행태 이면엔 어딘가 모르게 단단히 꼬여버리고 뒤틀린 심사가 어른거린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지극히 편향되고 날 선 비뚤어진 감정풀이가 이번만큼은 '기레기'들의 몫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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