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굴레, 외모지상주의

새 날 2017. 11. 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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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4일 포항 지진 피해 현장 방문 첫 일정으로 포항여고를 찾았다. 전날 수능시험을 치른 고3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농담을 건넸다. "수능일이 미리 고정돼 있고, 거기 맞춰서 대학별 입시 일정, 학사 일정 다 세워놨다. 학생들 성형수술 같은 것도" 대통령의 이러한 농담에 학생들은 즐거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난 대통령의 발언이 내심 불편했다. 비록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농담이긴 했으나, 대통령의 입을 통해 아직 미성년에 불과한 학생들의 성형이 언급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성형수술이 그만큼 일상으로 자리잡았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데다가 이러한 결과는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비슷한 현상은 사회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특성화고 등 직업계고는 진학이 아닌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교다. 취업률은 그와 관련한 객관적인 지표이자 신입생 모집의 기반이 되거나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각종 지원 등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마다 이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최근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을 심층 취재한 언론 기사를 통해 취업을 앞둔 3학년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생님이 졸업생 취업자 페이지를 보여주시면서 말했습니다. ‘삼성에 갔다. 못생기지 않았냐? 뚱뚱하다. 이런 학생도 갔으니 너희도 갈 수 있다.’ 금융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얼굴은 본다. 몸무게도 빼야 하고 웃는 얼굴에 예뻐야 한다. 키도 165㎝는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시사IN "'보이지 않는 학생들' 특성화고의 삶"에서 발췌>


외모는 취업 여부를 가를 만큼 결정적인 요소인 데다가 아직 미성년인 고등학생 신분의 아이들을 사회에 어떡하든 내보내 취업률을 높이려 하다 보니 인터뷰 내용처럼 교사들의 입에서 간혹 거친 언어적 학대 내지 성희롱성 발언이 튀어나오곤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인성을 올곧게 가꾸어야 할 책임을 진 일선 학교 교육 현장에서조차 이러할진대 외모지상주의가 지금처럼 만연한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학교 이력서에는 여전히 키와 몸무게 등을 기재하게 하는 등 사회의 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은 외모에서 비롯된 차별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사IN


사회 전반으로 팽배한 외모지상주의는 각종 미인대회 참가 실적마저도 취업용 스펙으로 둔갑시켜놓곤 한다. 미인대회와 취업을 위한 스펙이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지만, 속사정은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항공사 승무원이나 아나운서 등의 진로를 희망하는 취준생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조차 스펙으로 인정 받을 수가 있는 모양이다. 일종의 업계 관행에 가까운 결과물로 보인다.


현직에 몸담고 있는 선배들로부터 미인대회 입상 경험이 입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말을 전해 들은 취준생들이라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다른, 그러니까 차별화가 가능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도 미인대회 참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작용은 만만찮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회를 주최한 측에 의해 입상을 미끼로 술자리를 강요 받거나 성희롱을 경험하는 등 가뜩이나 취업이 되지 않아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취준생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단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는 법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음에도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채용 공고는 여전히 횡행한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외모가 경쟁력임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너도 나도 성형 대열에 합류하는 현상은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이 성형에 나서는 일도 이젠 드물지 않다. 수능 시험이 끝난 지금 이 시기가 성형 업계에서는 일종의 대박 시즌이다. 



우리나라는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성형국가다. 어느덧 성형기술마저도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근래에는 '얼평'이라 불리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는 방송이 인기를 끌 정도로 외모는 모든 이들의 핵심 관심사다. 우리나라에서 취업에 성공하려면 외모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속설은 더 이상 속설이 아닌 현실이 돼버린 지 오래다. 


물론 미인대회 입상 스펙이 있다고 하여 항공사 승무원 및 아나운서 등 방송 업계 직무를 더 잘 수행한다는 보장은 없다. 몸무게와 체중 그리고 외모 역시 직무 역량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는 엄연히 중요한 스펙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대우 받아 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오늘도 성형외과의 문전성시를 이끌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처럼 외모가 한 인격체의 경쟁력이 되고 스펙으로 평가 받는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이뻐져야 한다며 성형을 부추기거나 아이들은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성형외과로 달려가기 바쁘고, 성희롱 등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취업의 절박함에 이끌려 남들보다 더 나은 입지를 굳히고자 눈물을 머금고 미인대회에 참석하여 이의 입상을 꿈꾸며, 어느덧 대통령마저도 학생들의 성형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악순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란 참으로 요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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