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역사적 사실이 던지는 묵직함 '남한산성'

새 날 2017. 10. 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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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시절, 당시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명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에 의해 그 세력이 점차 쇠퇴해가던 와중이다. 청나라의 위세는 조선에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와 임진왜란 등 수 차례의 외침으로 인해 국력에 있어 이미 바닥이 드러날 대로 드러난 조선을 또 다시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결국 청나라의 대규모 공습으로 급작스레 조정을 남한산성으로 옮기는, 최악의 수모를 경험하게 되는 조선이다. 



조정과 임금의 몸은 우여곡절 끝에 남한산성으로 도피하긴 했으나 청나라 군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상황, 이들은 군사적인 위세를 앞세워 명과의 관계를 끊고 자신들에게 복종할 것을 조정에 강요해온다. 



이렇듯 청나라의 위협이 갈수록 커져가자 조정의 신하들은 청을 공격하고 명과의 신의를 지키는 대의명분을 따라야 한다는 ‘척화파’, 주변 여건 및 조선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청나라와의 화해를 절대로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주화파’로 첨예하게 갈린다. 척화파의 선봉에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의 대척점인 주화파에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이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청나라의 공격은 점점 집요해지고 있었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남한산성을 지켜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조정의 군인들은 차츰 다가오는 청나라 군대의 위세에 기가 눌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청나라의 실체, 백척간두의 위협 속에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나날이 날카로워져갔고, 임금인 인조(박해일)의 판단과 결단 역시 그에 비례해 갈수록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 작품의 원작은 김훈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 '남한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의 공격에 쫓겨가다시피 남한산성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갇히게 되는 조정,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인조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오랜 기간 신의를 지켜온 명나라와의 관계를 저버리고 오랑캐와 화친하느니 차라리 청나라에 맞서 죽음을 불사하는 등 결사항전에 나서 대의명분을 지켜야한다는 척화파의 주장은 비록 명분은 살리되, 또 다시 백성들을 전쟁의 참화와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자칫 나라마저 빼앗기게 하는 등 다소 무모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오로지 신의를 지키기 위한 명분 하나 때문에 전쟁을 치르자는 척화파의 주장을 일축하고, 청과 화친을 맺어 어떡하든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주화파의 목소리다. 물론 주화파의 주장 대로 조선의 임금이 치욕을 당하는 대가로 청과 화친을 이루고 나라를 살릴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으나 이미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백성들이 내던져진 채 그로 인한 고통을 겪은 뒤라는 현실은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척화파와 주화파로 상징되는 두 인물 김상헌과 최명길의 주장을 첨예하게 대립시키면서 어느 한 쪽으로의 치우침이나 가치판단 없이 시종일관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집요하고 묵직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스크린 위에 풀어놓으려 애를 쓴다. 배우 김윤석과 이병헌이 펼치는 열연은 이번 작품에 한껏 무게감을 실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며, 척화파 주화파 등 진영과 관계없이 오로지 싸우라는 명령만을 따른다는 수어청의 이시백(박희순)은 무관이 지녀야 할 덕목이란 어떤 성질의 것이어야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청나라에 쫓기며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된 뒤에도 척화파 주화파 사이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며 고뇌에 빠져드는 비운의 인조 역할은 배우 박해일이 담당했다. 조선의 노비로 태어났으나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자 청나라의 통역관이 되어 더욱 악랄하게 조정을 괴롭히는 배역인 조우진의 연기도 눈에 들어온다.



파벌로 갈라져 정쟁을 일삼는 등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보다는 오로지 나라를 생각하는 충신과 갖은 모략을 앞세워 입신양명만을 좇는 간신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므로써 현실에서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점은 매우 인상 깊다. 여전히 진영 논리로부터 단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채 국가와 국민보다는 오로지 자신들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다수의 현실 정치인들에게 비슷한 이유로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 아주 크다.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담담하고 묵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으나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졌던 점은 옥에티다. 



감독  황동혁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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