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한국인을 고문하는 방법'에 공감하는 이유

새 날 2017. 7. 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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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빠르게 퍼지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호응을 얻고 있는 이슈 한 가지가 있다. 다름아닌 '한국인을 고문하는 8가지 방법'이다. 과연 어떠한 행위들이 우리에게 가혹한(?) 고문을 행사한다는 것인지 우선 그 내용부터 한 번 들여다보자.


제1호 고문, 라면 먹을 때 김치를 안 준다

제2호 고문, 인터넷속도를 10mb 이하로 줄인다

제3호 고문, 식후에 커피를 못 마시게 한다

제4호 고문, 삼겹살에 소주를 못 마시게 한다

제5호 고문, 요거트 먹을 때 뚜껑을 핥지 못하게 한다

제6호 고문, 화장실 갈 때 폰을 못들고 가게 한다

제7호 고문, 버스가 완전히 정차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게 한다

제8호 고문, 엘리베이터 문닫기 버튼을 못 누르게 한다


8가지 고문 전부는 아니더라도 왠지 대체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들이다. 특히 라면 먹을 때 김치가 빠진다면, 이는 짜장면 먹을 때 단무지 없는 경우와 거의 같은 급의 재앙으로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다. 커피의 인기는 나날이 치솟고 있다. 출근길에서조차 테이크아웃 커피를 즐길 정도로 커피는 이미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소비재다. 그렇다면 만약 식사 후 커피를 못마시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흡연자들의 식후불연초와 거의 동급의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좋아한다는 돼지고기 삼겹살 부위, 여기엔 뭐니뭐니 해도 소주가 제격이다. 이는 진리다. 왜냐하면 맥주나 막걸리 등 왠지 다른 종류의 술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고소한 향과 맛을 뽐내는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먼저 넣은 후 뒤이어 쓰디 쓴 소주 한 잔을 털어넣을 경우 입안은 색다른 즐거움으로 온통 난리가 난다. 절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삼겹살과 함께 소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건 애주가들에게 있어 최악의 고문 행위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거리를 걷다가도, 대중교통을 이용 중일 때도, 우리는 온통 휴대폰에 마음을 빼앗긴 채 모든 신경을 그곳에 집중시키곤 한다. 물론 이유는 다양하다. 메신저를 주고 받을 수도 있겠고, 게임 삼매경에 빠졌거나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비하느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심지어 상대방과의 대화 중에도 눈은 휴대폰 속 깊숙한 곳을 항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스몸비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이니 어쩌면 화장실에 앉아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상의 모습일지 모른다. 이런 그들로부터 휴대폰을 빼앗는다면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8가지의 고문 내용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점 하나를 엿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 안에는 우리만의 빨리빨리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IT 강국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었던 건 초고속 인터넷망이라는 여타의 국가에서는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놀라운 인프라 덕분이다. 물론 그러한 인프라 또한 뭐든 빨리빨리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가 한 몫 단단히 한다.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급한 성미에, 아울러 이미 기가급 인터넷 속도를 맛본 까닭에, 인터넷 속도를 메가급도 아닌 10Mbps급으로 낮춘다고 하니 이러한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한국인은 아마도 거의 없을 듯싶다.


우리만의 빨리빨리 문화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전철을 이용하는 경우 하차하려는 고객이 모두 내린 뒤 승차 고객이 객차에 타야 하는데, 빈 자리에 먼저 앉으려는 요량 등 여러 이유로 아직 하차 고객이 전부 내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먼저 탑승하느라 승강장은 흔히 아수라장이 되곤 한다. 시내버스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하차하는 정류장에서 하차벨을 누른 뒤 차가 멈추면 그때 일어서서 내리면 될 것을,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양 굳이 서로 경쟁적으로 먼저 일어서서 하차를 준비하곤 한다. 물론 열악한 시민의식이 이러한 결과와 관련하여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일정 시간 경과 후 문이 자동으로 닫히게끔 제어돼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급한 성미는 그 짧디 짧은 시간마저도 좀처럼 견디지를 못한다. 지루함에 몸둘 바를 몰라해 하기 일쑤다. 더 이상 탑승 승객이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기 바쁘다. 길어 봐야 고작 몇십 초가량의 짧은 시간임에도 뭐가 그리 급한지 오늘도 닫힘 버튼을 열심히 누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에너지 낭비를 막자는 캠페인이 전개되고, 닫힘 버튼을 조작할 수 없도록 아예 물리적으로 이를 막아놓은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을 고문하는 8가지 방법', 이 또한 누군가가 웃자며 재미 삼아 만들었을 법하니 이를 향해 죽자고 덤빌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우리식 문화의 정수가 그 안에 제대로 녹아들어 있음이 확인된다. 모두가 공감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인기 리에 공유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러한 배경이 한 몫 단단히 거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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