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취춘기' '공시오패스'.. 취업절벽 앞 위태로운 청년들

새 날 2017. 4. 2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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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률이 하락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고교 졸업자 가운데 69.8%가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진학률이 7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기를 쓰며 대학에 진학하려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록 미흡하지만 모종의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는 탓이다. 그렇다면 대학 진학만이 살 길이라 여겨져오던 견고한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가 드디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물론 이는 섣부른 해석일지도 모른다. 학벌주의의 쇠퇴라기보다는 취업 절벽이라 불릴 정도로 좁아진 취업문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인 학벌주의와 서열화가 쉽게 사라질 리 만무하다. 4년제 대졸자 취업률은 3년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5년에는 64.4%까지 떨어지면서 대졸자 10명 중 4명이 취업을 못하는 처지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학교 졸업 이상 고학력층 실업자는 현재 50만 명에 달한다. 


ⓒ동아일보


이와는 반대로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시험에 뛰어드는 청년들은 되레 늘고 있다. 2017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지원자가 22만836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이다. 이 중 10대 지원자는 3202명으로 2년 전에 비해 무려 48%나 급증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대학 진학을 포기한 사람 전원이 공무원시험 준비에 뛰어든 결과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진학률의 감소를 나타내는 통계 수치와 10대 공시족의 급증 사이에는 상당한 수준의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의 길을 선택하든, 아니면 일반 기업체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의 길을 가든,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들은 결코 만만찮은 여정이다. 취업 절벽이라는 구조적인 모순과 맞닥뜨려야 하는 청년들의 삶은 위태롭기만 하다. 장기간 취업을 하지 못한 까닭에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토로하는 청년들이 근래 늘고 있다. 일부 취업 준비생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사춘기를 겪는 10대처럼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인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는 의미의 '취춘기'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는 까칠한 '중2병'을 상징하는 사춘기와 취업준비생의 합성어다. 취업준비생들의 불안 심리와 압박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들이 늘면서 이들만을 별도로 지칭하는 표현도 등장했다. 공무원시험의 경쟁이 예전보다 훨씬 치열해지고 이를 준비하는 데만 수년의 시간이 걸리면서 밀려드는 압박감과 불안감 때문에 성격이 예민해진 이들을 자조적으로 빗대는 '공시오패스'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소시오패스와 공무원시험의 합성어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사연은 현재 공시족들이 겪고 있는 심리 상태가 어느 수준에 이르고 있는가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독서실에서 공부 중이던 공시생이 옆자리의 다른 공시생에게 매일 커피를 사들고 오는 행위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 사치 아니냐"며 자제를 호소하는 포스트잇을 남겨놓은 사연이다. 조용히 공부하는 공간에서 커피 마시는 소리가 거슬리는 까닭에 그랬을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작성자가 남겨놓은 글귀의 행간에는 짜증과 불만 섞인 느낌으로 가득하다. 


ⓒ헤럴드경제


취업 경쟁이 치열한 탓에 수십 곳의 기업체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일은 이제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각 기업체에 특화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 자체도 만만찮은 작업이 돼버렸다. 채용의 첫 관문인 서류 전형부터 취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다가온다. 수천 자에 이르는 자기소개서를 정성껏 작성하여 수십 곳에 뿌려 봐도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동안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스펙 그 이상을 쌓느라 엄청난 공을 들여왔건만, 또 다시 수천 자에서 만 자가 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일부 살아남은 멘탈마저 탈탈 털리기 일쑤다.


지난 25일 서울에서 3년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한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험 준비에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잠시 쉬게 하려는 어머니의 권유로 함께 집으로 가던 도중 휴게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마음의 병을 앓으며, '취춘기', '공시오패스'라는 자조적인 표현마저 서슴지 않고 있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 앞에서 '노오력'이 부족하다며 자꾸만 등을 떠미는 기성세대의 오지랖은 잔인하기 짝이없다. 아울러 일자리를 늘린다며 정부가 각종 정책들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알다시피 숫자만 늘리고 정작 질은 현저히 떨어뜨리는, 생색용이자 전시성 사업이 주류를 이룬다. 이는 취업 절벽 앞에서 좌절을 겪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청년들로 하여금 희망고문을 떠안긴 채 두 번 울리게 하는 셈이다. 이번 장미 대선이 아무쪼록 이러한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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