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선택된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 '패신저스'

새 날 2017. 1. 6. 12:56
반응형

가까운 미래, 지구는 이미 포화 상태다. 과학기술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의 행성을 다른 은하에서 물색, 식민지화해 놓을 정도로 발전했다. 승객 5천 명과 승무원 200여 명을 태우고 '터전2'라 불리는 식민행성으로 향하던 초대형 수송선 '아발론호'는 인류의 꿈과 도전의 상징이었다. 물론 아발론호의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은 만만찮다. 무려 120년이 걸릴 만큼 먼 거리를 운행해야 했다. 때문에 동면 기술을 이용, 아발론호의 탑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동면시킨 채 자동 항법 장치에 의존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식이 이에 채용됐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첨단 과학기술을 빌려 자동 운항 중이던 이 아발론호의 외부 쉴드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크고 작은 운석들과 충돌하는 일이 빚어진다. 이의 여파로 몇몇 장치에 이상이 발생하고, 그 중 하나인 승객 짐 프레스턴(크리스 프랫)이 잠들어있던 동면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그를 깨운 것이다. 선체의 길이가 무려 1킬로 미터 이상에 달할 만큼 방대한 크기의 아발론호, 이 시각에 깨어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짐을 더욱 당황케 한 건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앞으로 90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한 짐이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승무원들이 동면하고 있는 구역에 들어가고 싶어도 그의 신분으로는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아발론호의 시설이 워낙 뛰어난 덕분에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만, 인공지능로봇이 자신의 유일한 말벗이자 소통 대상이라는 사실은 그를 절망 속으로 몰아넣는 유인 중 하나였다. 이런 생활을 1년 이상 지속하던 짐은 자신의 동면기를 고치려 시도하다가 우연히 오로라(제니퍼 로렌스)라 불리는 여성 승객의 동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지구에서 작가로 활동했던 그녀의 삶에 매료된 짐은 무작정 오로라를 흠모하기 시작하는데...



아발론호는 이제껏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아오던 우주선과는 그 규모나 시설 면에서 경쟁할 상대가 없는, 압도적일 만큼 역대급의 초호화 초대형 수송선이다. 아울러 작품속 아발론호는 무척 정교하게 제작돼 있었다. 이의 탑승은 여행상품의 구입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 짐과 오로라가 아발론호에 탑승했던 목적은 각기 달랐으나 새로운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고픈 기대치는 정확히 일치했다. 



지구를 떠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화성여행 상품 판매에 관한 황당한 외신을 간혹 접하곤 했는데, 아발론호의 여행상품 역시 그동안의 삶과 인연을 모두 정리하고 무려 120년 동안을 의도적인 동면 속에서 보낸 후 새로운 행성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영화속 이야기는 지금보다는 먼 미래의 일이기에 기술적으로 훨씬 진일보해 있으리란 점이 굳이 틀리다면 틀리다고 할 수 있겠다.



별이 촘촘히 박힌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수영장, 시시때때로 천체들에 의해 벌어지는 우주쇼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최첨단 시설의 초호화 우주선 실내,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 은하수가 흘뿌려진 우주 공간에 자신의 몸을 내던질 때의 그 짜릿함, 이러한 로맨틱함도 실은 누군가와 함께 즐기고 공유할 수 있을 때에나 멋진 체험으로 다가옴직하다. 


특수 제작된 우주복을 입고 나홀로 우주 유영을 즐기던 짐의 눈엔 어느새 굵은 눈물 방울이 맺히고 이내 또르르 흘러내린다. 무슨 의미인 걸까? 그의 발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우주의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인 것만은 틀림없다. 너무도 멋진 광경에 도취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이런 멋진 경험을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나홀로 즐겨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안타까워 흘린 눈물일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로봇 아서(마이클 쉰)는 그나마 아발론호 내에서 그의 유일한 말벗이 되어주는 상대였지만, 외로움을 완전히 달래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영화는 짐이 동면기에서 깨어난 뒤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한 축을 이루고 있고, 오로라가 그에 합류한 뒤 짐과 함께 펼쳐 보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또 다른 축을 이룬다. 그리고 승무원인 거스(로렌스 피시번)의 등장 이후 본격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오로라는 누가 보아도 당차고 똘똘한 신세대 여성이다. 맞닥뜨리게 된 운명 앞에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어떡하든 그로부터 탈출하려 몸부림친다. 출연 인물이 적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의 연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덕분에 제니퍼 로렌스의 매력이 유독 돋보였던 작품이다. 그러니까 제니퍼 로렌스의 광팬임을 자처하는 관객이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만큼 그녀의 매력이 도드라진다.   



오로라는 무언가를 성취하여, 특히 자신이 쓴 책이 인기를 끌었으면 하는, 만인에게 인정 받고 싶고, 이를 드러내고 싶은 자아실현 욕구가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 그녀였기에 아발론호라는 제한된 시공간에서, 이상형도 아닌 뭇남성과 단둘이 남게 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곤혹스러웠을 것 같다. 더구나 이러한 결과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녀의 자의식을 통째로 앗아간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짐과 오로라에게 맞닥뜨려진 운명은 결코 의미가 없지는 않다. 선택된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보다 큰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조차도 오로라의 동면을 방해한 결과물의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을 완전히 걷어낸 뒤의 얘기이지만 말이다.



군더더기가 없을 정도로 절제돼 있으며 섬세하게 잘 표현된 초호화 우주선, 그리고 광활한 우주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이번 작품의 백미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영상미를 꼽을 수 있겠다. 물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소재 자체는 독특하고 설정 또한 기발하였으나 연출력의 한계 탓인지 아니면 강약 없는 극의 흐름 탓인지 무언가 헛헛했던 느낌이다. 덕분에 그럭저럭인 영화가 돼버렸다.



감독  모튼 틸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