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추억의 '종로서적', 당신의 부활을 환영합니다

새 날 2017. 1. 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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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절,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는 매번 한결 같았습니다. 지금처럼 카페 문화가 창궐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덕분에 딱히 만날 공간이 여의치 않던 때라 저와 같은 사람들에겐 '종로서적'이 만남의 장소로는 그야말로 최적의 공간이었습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오거나 상대방이 늦더라도 우리는 개의치 않았으며, 더 나아가 서로를 원망하는 일 따위도 결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긋난 시간만큼 책 등을 뒤적이며 이를 다른 방식으로 메우거나 승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약속장소로는 더없이 훌륭했던 곳이 다름아닌 이곳 종로서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종각역 종로서적 앞' 하면 당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종로서적의 문화적 영향력과 파급력은 상당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모양이 독특하거나 삐까번쩍한 건물이 들어서면서 단순히 주변의 건물보다 층수가 높다거나 특이한 외양 덕분에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되는 것이 아닌, 순전히 책과 지식의 공급자로서의 문화적 역할만으로 종로서적은 서울 도심지의 명물로 각인되어 왔던 셈입니다. 훌륭한 지식을 얻게 하고 때로는 정보원으로서의 매개 역할을 톡톡히하면서도 소중한 만남과 인연을 잇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가 다름아닌 종로서적이었습니다.


1907년 문을 연 이곳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1호 서점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2002년 문을 닫을 때까지 무려 95년 동안 서울 종로에서 쭉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한동안 저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이 종로서적이라는 아스라한 추억이 근래 언론 매체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동일한 장소는 아니지만, 사라진 지 14년만에 그 추억의 이름이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달 23일 새롭게 터를 잡아 오픈한 종로서적은 세인들에게는 국세청 건물로 알려진 종로타워 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위치로 따지자면 예전의 그곳과는 길 건너 대각선 방향에 해당합니다.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전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정유년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종로서적은 종로타워 지하 2층의 넉넉한 공간에 마련돼 있었습니다.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인지 건물 입구에는 아직 제대로 된 안내판이 없었고, 다만 임시로 제작된 듯한 작은 이정표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새로 문을 연 종로서적은 매장 면적만 300평 가량이며, 규모로 따지자면 중대형서점급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6만 종에 이르는 10만 권 가량의 양서를 비치하고 있었습니다. 



개점일에 쫓겨 오픈을 한 탓인지 아직은 완전체로서의 모습을 갖추지는 못한 듯싶었습니다. 매장 뒤켠으로는 새롭게 오픈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으며, 일부 정리가 덜 된 부분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흥미롭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새로운 종로서적은 도서 코너와 먹거리 코너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 서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오픈하면서 내세운 여타 경쟁 서점과의 차별화된 컨셉트가 바로 이러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물론 이의 성공 여부는 조금 더 지켜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대형서점 하면 문구 코너를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이곳에도 제법 넉넉할 정도의 넓은 면적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개점 소식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입니다. 덕분에 공간은 굉장히 쾌적했습니다.



종로서적의 가세로 이제 이 일대는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3개의 대형서점이 서로 자웅을 겨루게 됐습니다. 소비자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물론 독서 문화의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매우 바람직한 결과임엔 틀림없습니다.



다만, 종로서적이라는 이름을 둘러싸고 최근 원조 논란을 빚고 있는 점은 우려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과거 종로서적의 대표를 맡았던 분은 언론을 통해 새로 오픈한 종로서적이 이름만 같을 뿐 실제 그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해당 상호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이번에 종로서적을 오픈한 대표는 과거의 문화적 향수가 깃든 문화를 이어받고 싶었고, 출판계 인사들을 통해 종로서적을 창립했던 이들에게 그와 같은 뜻을 전달하고 사전에 동의를 구했노라며 항변하고 있습니다. 


과연 작금의 논란이 어떤 방식으로 귀결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논란을 떠나 과거 문화의 메카 역할을 톡톡히했던 곳이 어떤 식으로든 다시 부활하여 현대적인 감성을 덧입히고 과거 종로서적을 아끼고 추억했던 사람들은 물론, 이곳을 공유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책과 지식을 매개 삼아 멋진 문화적 공간으로 각인된 채 다시금 종로의 랜드마크이자 21세기형 문화적 부표로서의 역할을 특톡히하여 당당히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 될 경우 원조 내지 정통성 논란 따위는 자연스레 눈 녹듯 사라질 게 틀림없습니다.

예전의 종로서적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로 나가야 만날 수 있었지만, 새로 오픈한 종로서적은 종각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도 훨씬 뛰어난 편입니다. 

추억의 종로서적, 당신의 부활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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