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제작진의 수고로움이 돋보였던 KBS '다큐멘터리 3일'

새 날 2016. 11. 3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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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이면 광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겐 일상이 돼버렸다. 그러니까 대략 한 달 전쯤부터인 것 같다. 광장을 밝히던 촛불의 숫자가 하나 둘 늘어나더니 어느덧 백만 개 이상의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역대급의 기록을 낳고 있는 이 놀라운 현상을 KBS '다큐멘터리 3일' 팀이 밀착 취재했다. 


27일 늦은 시각 전파를 탄 '촛불, 대한민국을 밝히다 - 광화문 광장 72시간' 편에서는 비선 실세 사태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가가 비상사태에 빠진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차분하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주고 있는 광장에 선 사람들의 갖가지 모습과 속내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3일'은 하나의 장소, 하나의 사건, 하나의 현상 그리고 주어진 한 공간에서 늘 동일한 시간을 보내는 익숙함이라는 명제와 관련하여 나름의 시선으로 낯선 일상들을 관찰해 왔다. 이러한 의도로 촬영한 72시간을 50분으로 압축,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다큐멘터리 3일'이다.

 


제작진은 광장에 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아직 앳된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멀리 제주도에서 그리고 부산, 김해 등지에서 무작정 올라온 시민들.. 


지난 대선에서 투표를 잘못한 죄책감 때문에 몸소 광장으로 나왔다는 사람, 아이들에게만큼은 잘못된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에 이끌려 나온 사람, 사는 곳이 다르고 생김새 또한 모두 다르지만,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한날 한시 한곳의 광장에 모여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행진하는 극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제작진은 광장에 직접 선 이들뿐 아니라 그 이면에서 묵묵히 자신의 의지를 펼치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던 사람들도 만났다. 촛불집회 당시 광장에 나섰던 이들은 느낄 수 있었겠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까닭에 자신이 머물던 곳 이외의 사정과 형편을 알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자리를 쉽게 옮길 수 없는 환경 탓에 시야가 일정한 지역으로 한정지어질 수밖에 없다. 다큐 3일 제작 팀의 수고로움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광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우리가 미처 다가갈 수 없던 영역과 그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던 사람들에게까지 카메라 플래시를 비추고 있었다. 



마음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사비를 털어 전단지며 수건을 직접 제작, 광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형 휴지통을 어깨에 짊어진 채 광장에 버려진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는 젊은이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행위 모두는 누가 시킨다고 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다. 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산물이다. 현명하고 성숙한 시민들에 비해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수준이 그에 훨씬 못미치고 있음을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는 한 목소리로 개탄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3일 팀이 제작한 방송은 광장에 직접 섰던 이들에게는 동시간대에 자신들이 미처 볼 수 없었던 현장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확인하게 하여 당시의 감동을 되살려 놓았고, 아울러 광장에 서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현장에서 꿈틀거리던 시민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생동감 있게 전달해 주어 시청자의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작금의 민심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헤아려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 추운 계절에 드넓은 광장에서 하루종일 촛불을 든 채 거리를 누비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건, 혹여 직접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해도 누구든 짐작 가능한 일이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시민들과 함께 수많은 시간을 차가운 길 위에서 보냈을 제작진들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다가오는 것도 다름아닌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밟혔던 대목 하나가 있다. 26일 진행된 제5차 범국민대회는 1박2일 철야로 이뤄졌다. 밤샘 집회를 갖고 다음날, 즉 27일 아침 첫차를 타고 귀가하자는 게 이번 대회의 모토였다. 27일 아침 집회가 마무리되는 장면이 담긴 이번 방송은 같은 날 밤에 방영됐다. 그렇다면 당일 촬영한 영상을 거의 실시간 수준으로 편집하여 방송에 내보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추운 계절에 현장 곳곳을 누비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테지만, 당일 찍은 영상을 그날 바로 방송에 내보낸다는 건 관련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라 짐작되게 한다. 백만 개의 거대한 촛불 파도가 만들어낸 이 놀라운 감동이 채 식기 전에 시청자에게 이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 시의성이라는 가치에 모든 걸 내걸었을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촛불은 이번 주에도, 그리고 다음 주에도 계속될 것 같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끝까지 책임을 회피한 채 오히려 작금의 혼란을 정치권에 떠넘기면서까지 정치적 꼼수를 모색하고 있는 정부 수장과 집권 여당의 행태를 보니 촛불이 자칫 횃불로 변모하여 활활 타오를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하지만 백만 개의 촛불을 광장에 밝히며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성숙한 시민과 이들이 만들어낸 감동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안방에 전달하는 이들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이상, 동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격언이 괜한 게 아님을 새삼 확신하게 된다.


* 이미지 출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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