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언론의 통렬한 자기 반성,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새 날 2016. 11. 2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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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대규모 촛불집회가 있던 지난 12일 오후 늦은 시각, 종각 부근에서는 언론노조 소속으로 보이는 한 집회 참가자가 마이크를 잡은 채 "19일 방영될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많이 시청해 달라"며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알려진 바 없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과 관련한 취재 내용이 해당 방송에 담겨질 것이라는 예고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방송 전부터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박 대통령의 비밀을 밝히고, 비선 실세 국정 농단 파문과 세월호 7시간 사이의 숨겨진 진실을 추적했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해당 방송은 촛불 민심과 함께 세간의 관심을 온통 한 곳으로 모으고 있었습니다.


19일 드디어 그의 뚜껑이 열렸습니다. 이날은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게이트'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던 터라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지대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시청률에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20일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전국 시청률이 19%를 기록한 것입니다. 10년 이래 최고의 시청률이었다고 합니다. 세간의 관심이 동시에 폭발했노라는 방증입니다. 방송은 2014년 불거진 비선 실세 의혹 사건 당시 해당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았던 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화를 되짚으면서 시작됐습니다.


ⓒSBS


아울러 지난 4년 간 박근혜 정권의 행적을 돌아보고 의아하거나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사건들이 많았음을 토로하면서, 사실은 대통령이 취임하는 그날부터 최근 드러난 권력의 치부가 주변에 어른거리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이상하게 생각되던 행적들은 하나 같이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이라는 인물을 대입시키면 퍼즐이 완성되는 신기한 마법을 부렸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납득하기 어려웠던 웬만한 사건들은 죄다 최순실이라는 인물 하나로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습니다만,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선 이의 대입으로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고, 그 비밀의 7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풀고자 그들이 지닌 모든 역량을 이에 쏟아부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2010년 줄기세포 시술을 진행했던 회사 관계자의 제보를 통해 대통령이 왜 국회의원 시절부터 제대혈 관리나 줄기세포 연구 따위에 관심을 가졌었는지, 아울러 대통령이 된 이후 그와 관련한 규제를 풀었던 이유가 대통령의 시술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배양한 줄기세포 시술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해당 병원은 이제껏 불법 의료 시술을 해온 셈이 됩니다. 이런 분이 그동안 원칙과 신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 참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그러하듯 저 역시 '그것'이 알고 싶어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하였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그 7시간과 관련한 미스터리를 속시원히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을 유발했던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차움병원 진료 의혹과 관련해선 그러한 일은 절대로 없었노라며 병원장이 직접 해명과 선긋기 시도에 나서게 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이 불가능합니다만, 어쨌든 의사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한편 제작진이 차움병원 직원들을 취재한 결과 병원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자료의 조직적인 삭제와 은폐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입증은 어려웠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시크릿과 관련한 마지막 퍼즐은 조각을 미처 채우지 못한 채 미완의 상태로 멈춰 서야 했습니다.


진행자인 김상중 씨는 진심을 다해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최선을 다해 자료를 분석했지만, 끝내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없었노라며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7시간 동안 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밝혀야 한다 라며 힘주어 말하였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시크릿'은 대통령 스스로가 풀어놓지 않는 이상, 여전히 의혹으로 남은 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오늘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가 있었습니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하여 범죄 혐의 전반에 걸쳐 상당한 공모 관계가 있다고 적시하였습니다. 헌법상 불소추 특권에 따라 재임 중에는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습니다만, 어쨌거나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이제 피의자의 신분이 된 것입니다. 


ⓒ연합뉴스


김상중 씨는 그동안 언론이 제 역할과 책무를 스스로 방기해온 사실을 깨끗이 인정하였습니다. SBS 역시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며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노라 말하였습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 석자가 공중파 TV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인정하고 대국민사과를 하고 난 뒤부터의 일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렇듯 권력의 눈치만 살피느라 진실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거듭해 왔습니다. 여론을 왜곡시키는 등 오히려 현 권력의 충신 역할을 자처해 온 경향이 큽니다.


이번 방송 결과가 기대치와는 너무 다른 바람에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미흡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언가 시원한 한 방을 기대했건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 편집됐다거나 알맹이만 쏙 빠진, 수박 겉핥기식의 보도로 일관했다는 비난 등이 쏟아질 법도 합니다. '대통령의 시크릿'과 관련한 명쾌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이들에겐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혹자는 용두사미라는 표현마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그에 비례하여 실망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이 그동안 권력의 눈치만 살피며 진실을 철저히 외면해온 행태에 대해 이를 고해하고 그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겐 무척 고무적으로 다가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뉘우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진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이 변하지 않고선 우리 사회가 올곧은 방향으로 단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음을 최근의 대가를 통해 확인했으니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뼈를 깎는 성찰을 통해 제 역할을 온전히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하여 시민들에게, 특히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 세대들에게, 촛불은 결코 바람에 의해 꺼지는 법이 없으며, 어둠이 빛을 이길 수도 없고,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론 매체가 몸소 입증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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