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책과 맥주의 조합 '책맥' 붐을 환영하는 이유

새 날 2016. 10. 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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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태블릿을 왜 구입하느냐고 묻는다. 특히 아내의 눈초리가 제일 매섭다. 이럴 경우 가장 둘러대기 좋은 건 바로 전자책으로써의 활용도다. 물론 이는 태블릿의 구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딱히 용도가 뚜렷하지 않은 녀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둘러대기라도 해야 명분이 생기니 말이다. 일종의 구실이었다. 심지어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불어 넣기까지 한다. "그래, 난 전자책이 필요한 거야."

 

사실 내겐 진짜 전자책이 하나 있다. 물론 수년 전에 구입한 녀석이라 이젠 고물로 전락했다. 그래도 무려 컬러였으며, 안드로이드를 OS로 채택한, 당시엔 상당히 획기적인 녀석이었다. 세월의 흐름은 이 녀석인들 비껴갈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성능상 최신 어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다 이젠 너무 느린 속도감에 속이 터져 더 이상 사용하기엔 무리였다. 이쯤되면 이미 구입 명분을 만들어 놓았겠다, 아울러 자기 최면도 한껏 불어 넣었겠다, 태블릿을 구입하는 과정에 더 이상의 장애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전자책 대용이라고 하니, 그 속내야 둘째치더라도 누가 보아도 일단 그럴 듯한 명분임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세계일보


현재 내 손에 쥐어진 태블릿에는 이렇듯 나름의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녀석의 구입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전자책 단말기에서 가장 쓰임새가 높았던 전자도서관 어플이 안타깝게도 새로 구입한 태블릿에는 설치가 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호환성에 문제가 있었다. 어플 개발자가 한없이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물론 검색 신공을 발휘, 그를 대체할 만한 어플을 찾을 수는 있었다. 현재 이를 사용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어플은 원래의 것에 비하면 많이 미흡했다. 단순 DB 형태 만으로 서비스가 제공되는 바람에 신간 도서 등의 따끈따끈하면서도 유용한 최신 정보를 얻어 올 수 없는 현실이 가장 맹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용 빈도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아주 가끔 해당 어플에 접근하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불편을 느끼곤 했으니 점차 손에서 멀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었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태블릿을 완강히 거부하던 그 전자도서관 어플이 판올림을 거듭하면서 무언가 달라졌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해당 어플 페이지에 접속하며 알게 된 따끈따끈한 소식이었다.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분명히 설치조차 되지 않던 녀석에게 설치 버튼이 떡하니 뜨는 게 아닌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반가운 마음에 앞뒤 가릴 것 없이 우선 설치부터 해 본다. 어플은 무리 없이 깔렸고, 실행에도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예전 전자책에서 사용하던 그 감흥이 태블릿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정작 어플을 설치한다고 하여 책을 잘 읽지는 않을 테지만, 어쨌거나 흡사 세상을 전부 얻기라도 한 양 무언가 뿌듯한 감정이 밀려 든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선 내가 자주 가던 전자도서관을 등록하고 당장 책 두 권을 대출 받는다. 가장 최근에 들어 온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다. 이렇듯 감개무량한 일을 경험하고 나니 새삼 최근 유행하고 있는 책과 관련한 트렌드 하나가 떠오른다.

 


요즘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동네 작은 책방이 새롭게 단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책을 빌려 보며 맥주를 마시는, 이른바 '책맥'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부터다. 언뜻 보니 썩 괜찮은 시도라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문화가 유행하고 있는 배경에는 다소 씁쓸한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짐작대로 이는 일본에서 건너 왔다. 알다시피 일본은 우리보다 혼밥과 혼술 문화가 앞서 만개한 나라다. 혼자 놀기 문화가 일찌감치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그 중 한 가닥으로 여겨지는 '책맥'이 자연스럽게 발아하여 탄생한 셈이다.

 

그러니까 고독한 청춘들이 나홀로 책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고독감을 애써 지우거나 치료하기 위한 요량으로 맥주를 곁들이던 형태가 어느새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물론 이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혼밥 혼술 문화의 연장선이다 보니 그의 이면을 들춰 보면 꽤나 씁쓸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책과 맥주는 정황상 왠지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지극히 이질적인 조합이다. 더구나 맥주와 함께할 수 있는 도서 영역이라고 하면 무언가 특정 분야로 국한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진지하거나 많은 생각을 요하는 도서 류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 보인다.

 

때문에 이러한 유행이 가뜩이나 책을 읽지 않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염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지극히 가볍거나 자극적인 소재의 책들 위주로 주목을 받으며 출판계를 기형적인 형태로 변모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대목 때문이다. 아울러 여건상 결혼을 기피,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며 나홀로 문화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현 세태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데 일조하지는 않을까 싶은 점도 우려스럽다. 책과 맥주가 어울릴 법한 조합이냐며 손사래를 치시는 분들의 모습도 눈에 어른거린다.

 

ⓒ부산일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러한 유행이 반갑다. 최악의 경우 특정 소재나 분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해도 어쨌거나 해당 문화를 통해 왠지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책이 다시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가볍게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맥주의 친밀성과 접근성처럼 은근슬쩍 우리 곁으로 쉽게 다가오는 책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다소 딱딱한 이미지의 책을 조금이나마 물렁하게 만드는 역할을 왠지 이 '책맥'이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보면 책과 독서의 일상화라는, 기분 좋은 저변 확대에도 일조하게 되지 않을까?

 

가볍게 마시는 맥주는 일상에서의 피곤을 잊게 하는 일종의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쩌면 책과 맥주의 조합이 나름 괜찮게 느껴지는 건 두 매체 모두 이렇듯 우리네 삶의 청량제 역할을 해 주는 묘한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를 매개로 일상에서 멀어진 책을 다시금 가깝게 연결시킬 수 있다면 '책맥'은 그 자체 만으로도 강력한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이의 유행으로 동네에서 자취를 감췄던 책방이 부활, 동네 곳곳에 개성 넘치며 삶의 쉼터가 될 수 있는 이쁘장한 책방이 다시 생겨나는 현상도 한껏 기대해 봄직하다. 때문에 난 '책맥' 붐을 적극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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