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여권 속 성차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유

새 날 2016. 7. 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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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여권 속 일부 영문 표현이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한 시민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향후 새 여권에는 해당 문구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부는 앞으로 여권 첫 페이지에 있는 통행 보장에 관한 문구에서 여권 소지인을 ‘him(her)’로 표현한 데 대해 이를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권을 발급 받은 후 들뜬 마음으로 여권 첫 페이지를 살피던 중 우연히 여권 소지인을 ‘him(her)‘로 표현한 것을 발견한 해당 시민은 이 문구가 성차별적인 표현으로 생각되어 이의 개선을 제안한 끝에 얻은 성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견하기조차 쉽지 않은 데다 혹여 알았다 하더라도 모른 척 그냥 넘어가기 십상일 텐데, 이렇듯 적극적으로 개선을 바라고 몸소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우리 사회는 아마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꼭 좋은 방향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할 테니까요. 어쩌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눈에 잘 띄지 않는 영역인 데다 영문으로 되어 있어 별다른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사안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합니다. 


ⓒSBS


실제로 한 포털의 해당 기사 말미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은 죄다 그러한 분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베플뿐 아니라 대부분의 댓글들이 온통 삐딱한 시선과 비아냥 일색입니다. 더구나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차별이라는 표현이 무척 거슬리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혹자는 별 시답잖은 건으로 일을 부러 만든다며 불쾌한 속내마저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과연 사소한 일일까요? 물론 가진 자의 시각에서는 매우 하찮게 여겨질 법한 사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늘 상당한 수준의 격차와 차별적 관행 속에서 이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하찮고 사소한 일일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되레 뼛속 깊숙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사안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국 여성의 지위는 세계 최하위권입니다. 이는 객관적인 지표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145개 비교 국가 중 고작 115위에 불과합니다. 남성의 65% 수준입니다. 이는 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세계경제포럼 '2015 세계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중 우리나라의 '성(性) 격차지수'와 관련한 결과물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적어도 우리보다 모든 영역에서 한 수 아래라고 생각되던 중국조차 9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대목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도 OECD 회원국 중 터키, 일본과 함께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남녀 간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 가장 크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객관적인 지표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지위를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데, 일부 남성들은 절대로 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되레 여성혐오를 부추기거나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목청을 높이기 일쑤입니다. 이쯤되면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여권의 성차별적 요소와 관련한 개선 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권 소지자를 특별한 성별로 묘사한 건 성차별도 성차별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결코 바람직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근래엔 여성 남성을 넘어 제3의 성을 스스로 택하여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소지자를 굳이 남성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로 표시하는 건 시대에 매우 뒤떨어지는 데다, 이번 사례처럼 자칫 은연중 성차별적 인식을 고착화하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이는 누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개선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매우 보잘 것 없는 사안이라고요. 예, 맞는 말씀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여권에 적힌 문구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이를 알아채기도 쉽지 않을 만큼 극히 사소한 사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사안들이 누적되어 쌓여가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 어느덧 부지불식간 우리 사회에 성차별적 관행을 만연시켜 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가 이러한 분위기에 젖어든 채 심지어 성차별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뉴시스


우리 사회의 여성은 여전히 차별 받고 있는 존재이자 사회적 약자입니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분야에서 불평등이 두드러지는 만큼 고용에 있어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해주는 일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게 미흡하고 척박한 상황에서 그나마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이를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통해 여성을 향한 관행화된 차별적 요소와 구태의연한 악습들을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해당 법률이 여성들을 위한 전유물이라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란 현존하는 남녀 간의 고용차별을 없애거나 고용평등을 촉진하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즉 한시적으로 특정 성을 우대하는 조치일 뿐, 여성만을 우대하겠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거꾸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불평등한 입장이 되고 차별을 당한다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 언제든 반대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 차별 받고 있는 대상이 여성임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비록 여권 속 해당 문구가 보잘 것 없는 성차별적 표현의 한 사례에 불과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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