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단톡방'에서의 사적인 대화가 왜 문제일까

새 날 2016. 6. 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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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대학교 학생들이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이하 '단톡방')에서 나눈 사적인 음담패설성 대화가 공개되면서 확산된 논란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양상이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성적 비하와 험담 등 언어폭력이 지속적으로 행해져왔다는 뜨악한 사실 때문이다. 일단 사적인 자리이든 공적인 자리이든, 아울러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상대방이 없는 공간에서 누군가를 험담하고, 심지어 성적 비하를 일삼아온 행위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 하다. 이들을 향해 법적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비난의 목소리가 비등한 이유도 다름아닌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 학생들이 대자보를 통해 공개 사과했고, 학교 역시 진상 조사에 나선다고 했으니 앞으로의 추이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게 맞을 듯싶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는 예사롭지 않다. 단순히 언어 폭력과 같은 일탈 행위 때문만은 아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시작된 손바닥 혁명이 어느덧 우리의 일상속 대화 패턴마저 바꾸고 있고, 또한 그에 걸맞는 규칙이나 예절 따위가 새롭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머릿속에서 늘 오만 가지 상상의 날개를 펴곤 한다. 때로는 아주 해괴망측하고 윤리적인 잣대로 볼 때 절대로 용납이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서슴없이 머릿속에서 그리곤 한다. 하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어 공공연하게 표현하거나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아무도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 


카카오톡


친구나 가까운 지인과의 지극히 사적인 대화 역시 그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지금 단톡방 문제가 논란으로 불거진 상황이라 그렇지,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성별을 떠나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적인 대화라면, 사실 욕설과 성적 비하 그리고 음담패설까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법한 갖은 막말들이 오고가곤 하는 게 보편적이라 할 수 있을 테다. 나를 포함한 누구인들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누가 들어도 낯뜨거울 수밖에 없는 대화를 만약 여러 사람들이 듣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니까 적어도 2명 이상이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공연성이 충족되기에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는 사안이기는 하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 체계를 지닌 사람이라면 그러한 성향의 대화를 공공연하게 공개된 장소에서 나눌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단톡방을 마치 사적인 오프라인 공간이라도 되는 양 착각했던 탓인지, 아니면 편안함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들의 대화에는 거침이 없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스마트폰은 또 다른 소통 창구다. 도심속 카페 같은 곳에 둘러앉은 사람들조차 직접 대면하며 대화하기보다 온통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현상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도구가 된 셈이다. 근래엔 개설된 단톡방이 너무 많아 이를 관리하느라 24시간이 부족하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단톡방의 성향도 자신이 현재 맺고 있는 오프라인에서의 직간접적인 인간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당연한 노릇이겠으나 어떤 단톡방이냐에 따라 오프라인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화에 임하는 태도나 예절 역시 그에 걸맞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간혹 다른 방으로 착각하여 엉뚱한 메시지를 보냈다가 곤혹을 치렀다는 후일담도 커뮤니티 등에서 곧잘 회자되곤 한다.



이미 오프라인을 통해 우의를 돈독히 다진 친구라면, 그것도 1년 동안이나 단톡방을 개설한 채 대화를 나누는 절친 사이라면, 의무감에 의해 연결된 여타의 단톡방 대화 상대자들에 비해 짐짓 부담감이 덜했을 테며, 일종의 해방감 따위도 만끽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친한 친구 사이인 만큼 허물이 없으니 대화도 그에 걸맞는 수준이 되기 일쑤였을 테다. 이른바 불알친구처럼 가까운 상대라면 사실 뭔 말이든 못 나누겠는가 싶다. 그러니까 이러한 상황이 단톡방이 아닌, 다른 오프라인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은밀히 이뤄졌다면 사실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들의 대화 내용에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결정적으로 간과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자신들이 나눈 대화를 이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실시간으로 엿볼 개연성이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이뤄진 대화이기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법적인 해석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대화내용이 얼마든 유출될 수 있기에 단톡방을 사적인 공간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가 한결 같은 법원의 해석이다. 


ⓒ서울시


손바닥 위의 작은 혁명, 즉 스마트폰은 세상 풍경을 참 많이도 바꿔 놓았다. 근래 보행 중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 각종 사고와 민폐를 유발하자 서울시와 경찰청은 젊은 층이 많이 다니고 교통사고가 잦은 강남역, 홍대 앞 등 5개 지역에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위험을 알리는 교통안전표지와 보도부착물을 설치하는 시범 사업을 벌인다고 밝혔다. 이는 비단 우리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해외에서도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이 문제로 불거지자 교통안전표지나 도로 위 주의신호등 따위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이 만든 새로운 풍속도라 할 만하다.


단톡방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우리는 별 다른 문제 의식 없이 이를 마치 오프라인 상황에서의 대화처럼 인식하고 가볍게 이용해온 경향이 크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대화의 형태가 급변하고 있고, 패러다임마저 변모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우리에게 일정한 길안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셈이다. 


제한된 공간이라고 하여 우리가 단톡방에서 나누는 낯뜨거운 대화가 오프라인에서처럼 그대로 묻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번 사건은 단톡방에서의 특정인을 향한 모욕이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성립을 얼마든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여기서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이 충족되려면 공연성의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공연성이란 2인 이상이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나 상태를 일컬으며, 실제로 인지를 했는지 혹은 안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가능성만 있으면 조건이 충족되는 까닭에 이를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 아무튼 오프라인에서건 온라인에서건 입조심은 언제나 진리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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