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공원에서 음주시 과태료 부과, 난 이렇게 생각한다

새 날 2016. 6. 1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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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가 '서울특별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해당 조례에는 도시공원이나 어린이놀이터 등을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술을 마시면 과태료 10만 원을 물도록 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그리고 극장, 음식점 등 대중시설에서 술에 취해 남에게 주정을 부린 사람에게는 5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된다. 뿐만 아니다. 주취자에게 술을 판매하는 판매자에 대한 제재 방안도 추진된다. 알코올 농도 0.05% 이상 술에 취한 사람에게 술을 판매하여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주류판매자에게도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되는 방식이다.


이는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한강시민공원 내 매점에서 17도 이상의 술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음주폐해예방 추진계획'에 비한다면, 적어도 실효성 논란만큼은 없기에 한층 진일보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조례안에 따르면 '음주청정지역'은 하늘공원, 올림픽공원, 월드컵공원, 한강공원 등을 포함하여 모두 2811곳에 이른다. 이밖에 서울시장의 지정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을 추가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아직 입법 예고 수준에 불과한 조례안을 두고 사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찬반 논란이 거세다. 물론 예견됐던 바다. 자기 혼자 즐겁겠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많은데 과태료 10만 원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부터, 술을 마시는 건 허용하되 책임을 제대로 지지 못 하고 주정 부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이 낫지 않겠느냐는 등 제법 진지한 의견까지, 매우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이와 비슷한 정책은 정부나 지자체를 통해 수차례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류업계나 상인 등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에 막혀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때문에 이번 조례안이라고 하여 통과된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다. 다만, 이렇듯 자꾸만 거듭되는 시도가 결국 철옹성처럼 굳건하여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뿌리깊은 우리의 음주문화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 세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것이고, 또한 이에 대한 개선의 불쏘시개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물론 이번 조례안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결코 틀린 의견은 아니다. 더운 날 한강변에 앉아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한 잔 누릴 수 있는 자유까지 왜 빼앗아가느냐며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올 법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을 통해 보장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 및 권리라고 하여 무한정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흡연을 사례로 한 번 들어보자. 성인이 되면 누구에게나 흡연권이 보장된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해당 권리가 비흡연자들의 건강권보다 우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종 금연 정책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논리가 바탕이 된다. 



음주 역시 마찬가지다. 알코올은 이성과 의식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에 영향을 미쳐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음주는 본능적인 충동과 공격적인 성향을 더욱 부추기기까지 한다. 이는 결국 술을 마시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심한 경우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각종 범죄나 사건 사고에서 술이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흡연이 비흡연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이유로 인해 현재 금연 정책을 자꾸만 강화시켜 나가고 있듯, 음주 행위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심지어 각종 사고를 빈번하게 발생시킨다면 이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제한은 필요악이 아닐까? 


며칠 전 온 가족이 외식을 마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위에서 신호대기로 멈춰서 있었으나 술에 취한 운전자의 SUV가 그대로 들이받아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렇듯 술로 인한 폐해는 일개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 차원으로 점차 확대되어 다양한 병폐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중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2만4399건으로 약 10.52%에 달한다. 이중 사망자는 583명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만의 그릇된 음주 문화가 빚은 뜨악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때때로 개인의 권리에 대한 가치보다 공공의 그것이 더욱 크게 부각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보다 혼란을 조금이라도 먼저 겪었을 선진국의 사례를 헤아려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선진국의 경우 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에 대해 국가가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원칙만큼은 적어도 우리보다는 월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여타의 국가에서는 공원이나 야외에서의 주류 판매는 고사하고 음주 행위 자체가 아예 금지돼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의 권리보다 공익의 가치를 더 높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줄 개연성을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시켜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겠노라는 의지의 산물이다.


ⓒ머니투데이


그렇다고 하여 해외의 사례나 시선이 무조건 옳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실을 이들을 통해 확인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 수 있다.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의 음주 문화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폭력' 그 자체다. '폭탄주 돌리기'와 같은 폭음과 강권 그리고 음주 행위에 대한 관대한 문화까지,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엔 우리의 모습이 더없이 진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하기 짝이없게 받아들여진다. 장소에 구애 받지 않은 채 시도 때도 없이 마음 편히 술을 마실 수 있고, 또한 음주에 대해 더없이 관대한 문화는 전국 산하를 온통 음주판으로 물들여놓기 일쑤다. 풍광 좋거나 산세가 뛰어난 곳에 가게 되면 으레 술판부터 벌어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고속버스에서 이뤄지는 음주가무는 경찰의 단속에도 아랑곳없다. 이렇듯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음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연간 20조 원에 이른다. 이제는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단시간 내에 인식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면, 일단 제도나 정책을 통해 이를 유도하는 방법도 괜찮지 않을까?


서울시의회는 서울시와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한 뒤 8월 열리는 상임위에 해당 조례안을 상정할 예정이란다. 물론 이를 반대하는 세력 역시 만만찮기에 여론 수렴 과정에서 원안 그대로 통과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최악의 경우 또 다시 좌절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음주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은 이미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의회의 조례안에 담긴 음주청정지역은 다른 지자체에서 벌써부터 시행 중이다. 충북 청주와 부산시에서 이미 운영 중에 있다. 실제로 조례가 통과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과 시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음주 문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경종을 울려 이를 바꿔나가는 기폭제가 될 것이 틀림없기에 난 이번 조례안을 적극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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