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한 달 동안을 103만 원으로 살아보시겠어요?

새 날 2016. 6. 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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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 문제는 늘 뜨겁다. 조금이라도 더 받겠다는 노동자 측과 그와는 반대로 최대한 덜 주려고 하는 사용자 측이 팽팽히 맞서며 기싸움이 벌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 경영계는 혼자 사는 노동자가 한 달 간 먹고 사는데 필요한 금액을 103만 원으로 책정했다는 소식이 한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는 노동계가 주장하고 있는 169만 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뿐만 아니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을 기준으로 환산한 126만 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론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는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번 최저임금 논의에서 상대방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경영계 측 나름의 묘수로서 산정 기준을 최대한 낮게 잡은 탓이다. 실제로 경영계는 생계비 산출 기준으로 소득수준 하위 25% 생계비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반면, 노동계는 전체 노동자의 평균 생계비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했다고 한다. 즉, 경영계는 전체 노동자의 평균 수준이 아닌 하위 25%에 기준을 맞춤으로써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아주 기본적인 여망마저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최저임금 논의가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경향신문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보호를 위해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우리의 최저임금 수준은 결코 높지 않다. 오죽하면 그동안 주로 기업과 재벌을 대변해온 새누리당마저도 이를 올리겠노라며 공공연하게 주장을 할까 싶다. 2015년 OECD 34개국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27위에 그친다. 아울러 한국 노동자의 임금 상하위 10% 격차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의 차이가 무려 4.8배로 34개 국 중 32위에 머문다. 이는 최저임금 수준이 낮은 데다 최저임금조차 못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절실한 이유 중 하나다.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있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시간당 최고 9000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020년까지 1만원, 정의당은 2019년까지 1만원 인상안을 내걸었다. 한편 7일부터 시작된 실제 최저임금 협상에서 노동계는 1만 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경영계는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최저임금 수준은 절대로 낮은 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어느 선에서 접점을 찾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현재의 최저임금이 많다며 주장하는 사용자 측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노동자는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동시에 한 가정과 국가의 소비 주체이기도 하다. 즉, 노동자가 가난하면 소비가 이뤄질 수 없고, 이는 결국 기업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 역할을 톡톡히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가계소득이 정체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면서 도무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임금을 동결하게 되면, 소비의 주체인 노동자들은 지갑을 더욱 열지 않게 될 테고, 이의 여파로 기업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지 못해 우리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가혹한 불황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결과 하나를 소개해볼까 한다. 버클리 대학의 데이비드 카드 교수와 프린스턴 대학의 앨런 크루거 교수는 서로 다른 최저임금을 도입한 주의 사례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과 실업률 증가 사이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노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뉴저지 주가 최저임금을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올린 데 대해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4.25달러를 그대로 유지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전후를 비교한 결과, 최저임금을 올린 뉴저지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외려 펜실베이니아 체인점보다 고용을 더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들기에 결국 노동자에게도 손해가 될 것이라는 그간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은 결과다. 세계은행 역시 2013년에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가 없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물론 이러한 몇 가지 사례만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당위성을 언급하기에는 그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극심한 경기 불황 속에서도 미국이나 영국, 일본, 독일 등 우리의 경쟁국이자 이웃 국가들이 앞다투어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우린 주목해야 한다. 이들 국가는 왜 우리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만 같은, 기업 혹은 국가가 직접 나서서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려고 하는 걸까? 이들은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즉,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체 가구의 소비 지출이 늘어나게 되면 그의 반대급부로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고, 이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적절한 최저임금 인상은 경기를 위축시키거나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되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동시에 빈부격차를 해소하게 되고 소비 진작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게 하고 있는 셈이다. 


끝으로 최저임금과 관련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15년 1월 20일 미 의회에서의 연설을 다시금 곱씹어보자.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한 연설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다. "여기 의원들 중에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씩 꼬박꼬박 일하면서 1년에 1만5천 달러도 안 되는 돈을 받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한 번 살아보세요. 그게 아니라면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수백만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데 표를 던지십시오" 


나 역시 103만 원으로 한 달 간 먹고 사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기업 경영자들에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똑같은 조건으로 한 번 살아보시라고 진지하게 권하고 싶다. 최저임금 결정은 그 이후에 해도 결코 늦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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