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관태기' 앓고 있는 청년들, 그 씁쓸한 이면

새 날 2016. 6. 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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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청년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이를 가리키는 용어가 새삼 주목 받고 있을 정도다. 다름아닌 '관태기'라는 신조어다. 이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자발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대인관계에 미련을 두지않는 청년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한 매체의 여론조사 결과는 이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입증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대한민국 20대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가 자발적으로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있었으며, 80% 가량은 혼자 보내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응답했다. 또한 25% 정도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쯤되면 '관태기'란 용어가 청년층을 관통하는 최신 트렌드의 또 다른 대표 주자라 할 만하다. 앞서 언급한 설문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대의 20대들은 인맥의 유지 관리에 쉬이 피로감과 회의감을 느끼고 있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에도 부담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비대칭적인 인기 그리고 최근 유행인 혼밥족, 혼술족의 이면에는 바로 청년들의 이러한 성향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온라인과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발달은 이를 더욱 부추기며 시간이 갈수록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를 단절시켜가고 있다. 


청년들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형식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 소모를 인내하지 못하며 이를 극도로 꺼려하는 경향이 크다. 반면 오프라인에서의 소극적인 관계맺기에 비해 온라인을 통한 관계와 소통은 훨씬 광활하며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해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의 소통을 통해 공감을 꾀하거나 위로를 얻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부담스러운 오프라인상에서의 만남보다는 익명성이 강한 온라인상에서의 가벼운 만남과 접촉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게 훨씬 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한 채 삼삼오오 모여 앉은 젊은이들은 이제 상대방을 쳐다보며 대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모바일 기기가 들려있고, 얼굴을 아래로 푹 숙인 채 기기에 집중하고 있는 현상은 어느덧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데다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작금의 결과를 전적으로 이러한 청년들의 성향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이 너무 큰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관태기를 조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엄중한 사회적 책무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각한 구직난이 청년들의 인간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 취업 사이트가 구직자에게 ‘취업 준비를 하면서 잃은 것’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자신감에 이어 돈, 자존감, 시간, 인간관계 따위를 언급했다. 아울러 청년의 4명 중 1명 꼴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인간관계 단절'을 취업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답하고 있다. 절친한 동료가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결코 웃을 수 없는 각박한 현실이 스트레스를 양산하며, 인간관계마저 점차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오늘날 청년들의 '관태기' 현상에는 어느덧 사회 저변으로 자리잡은 개인주의적 성향에 의해 형식적인 인간관계에 쉽게 피로와 회의를 느끼게 되고 그만큼 온라인에서의 소통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 이면에는 작금의 청년실업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게 한다. 


요즘 청년들이 집단을 중시했던 과거보다 방해 받기를 싫어하거나 자신이 원치 않는 걸 꺼려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건 틀림없다. 하지만 청년들이 오프라인상에서의 실질적인 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습득하고 타인과의 협력을 키워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의반 타의반 외면하게 되면서 그저 온라인상에서의 인간관계만으로 이를 대체하려다 보니 그로부터 발생하는 간극은 오롯이 사회의 몫이자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온라인상에서 제아무리 인기가 높고 활발하게 활동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의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의에 의한 경향도 무시할 수 없으나 그보다는 취업난이라는 세태와 사회적 무책임이 낳은 타의에 의한 인간관계로부터 점차 멀어져가는 청년들의 일그러지고 처진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구조적으로 해결책은 갈수록 난망인 데다가 기성세대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전무하다 보니 더없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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