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서울시 공원내 술 판매 제한 정책을 환영하는 이유

새 날 2016. 6. 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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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공원의 취객을 줄여보겠다는 취지로 알코올 도수 17도 이상의 술을 못 팔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빠르면 올해 말부터 한강시민공원 내 매점에서는 도수 17도가 넘는 술을 살 수 없게 된다. 또한 월드컵공원 등 서울시 직영 공원 내 매점에서도 모든 주류의 판매가 금지된다. 아울러 4도 이상의 주류 광고를 TV와 라디오 같은 미디어 매체를 통해 내보낼 수 없도록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여기서의 알코올 도수 17도는 상당히 상징적인 숫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소주의 평균치로 알려져 있으며, 현행법상 주류광고 금지 기준 역시 해당 도수에 맞춰져 있는 탓이다. 


예상대로 주류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선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는 각각 '참이슬 16.9', '16도 처음처럼' 등 저도주를 보유하고 있어 얼마든 판매가 가능한 까닭에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17.8도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17.5도인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은 판매가 금지되는 반면, 16.9도인 무학의 '좋은데이'는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원에서의 주류 판매가 금지된다고 해도 음주 행위를 막을 수 없는 이상 개인적으로 미리 준비해 오거나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술을 함께 구입하는 행위를 막을 방도가 없기에 결국 유명무실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주류업계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근래 저도주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어 애주가들이 아쉬운 대로 17도 이상의 소주 대신 이를 택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공원 내 매점에서의 판매만 금지되며, 그것도 17도 이상의 주류에만 적용될 뿐, 음주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혀 제재의 대상이 아니기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갖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번 서울시의 '음주폐해예방 추진계획'을 환영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24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음주량은 이미 위험 수준에 달해 있다. 지난해 대한보건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연간 23.2%에 달하는 음주자가 1회 평균 음주량이 7잔(여성 5잔) 이상이었으며, 주 2회 이상 음주하는 ‘고위험 음주자’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고위험 음주자는 일반 음주자에 비해 범죄와 같은 음주 폐해로 인한 경험률이 2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인이나 성범죄 등으로 이어지는 각종 폭력 사건의 30-40% 역시 주취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사회는 음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다. 성인으로 진입하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뒤틀린 음주문화는 사회생활로 접어드는 직장에 들어가서도 전혀 변할 줄을 모르며, 각종 미디어 매체는 그릇된 음주문화를 여과없이 대중들에게 전달시키면서 음주에 대한 경계심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있는 와중이다. 물론 근래 점차 강화되고 있기는 하나 과거 주취로 인한 범죄 행위에 대해 이를 관대하게 다뤘던 측면도 한 몫 한다. 결론적으로 음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정서가 모든 폐해의 단초다. 


선진국에서는 공원이나 야외에서 주류 판매는 고사하고 음주 행위 자체가 아예 금지돼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의 삶에 대해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개연성이 높은 음주에 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예외인 셈이다. 정부 역시 우리의 음주로 인한 폐해를 모르는 바는 아닌 눈치다. 대학 캠퍼스, 의료기관,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의 술 판매와 음주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수차례 추진했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류업계와 상인 등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로 번번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적어도 해수욕장이나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만큼은 술 판매 제한뿐 아니라 술을 아예 마시지 못 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음주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해외에서처럼 공공복리의 가치를 더욱 크게 부각시킬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관련업계의 반발이 거센 데다 당장은 실효성이 미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서울시의 정책이 우리 사회에 음주 폐해로 인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음주문화에 대한 관대한 정서를 차츰 바꾸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면, 이렇듯 지자체에서 먼저 분위기를 조성한 뒤 이러한 흐름이 여타의 지자체로도 확산이 되고, 자연스레 여론을 등에 업게 되는 정부 또한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정비와 정책 마련이 과거보다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난 서울시의 한강공원 내 주류 판매 제한 정책을 적극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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