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어르신 택배 서비스, 이래서 좋다

새 날 2016. 5. 2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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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급히 책 한 권이 필요하여 온라인 서점을 통해 이를 주문했다. 근래에는 당일 배송 시스템이 매우 잘 갖춰져있어 거주 지역에 따라 정해진 시간 내에 주문이 이뤄질 경우 그날 바로 내가 원하는 도서를 손에 쥘 수 있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에 주문한 책이 오후에 도착했다. 전광석화와도 같다. 그런데 의외로 택배기사님이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그동안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아 미처 깨닫지 못하였으나, 돌이켜보니 최근 어르신들의 배송 횟수가 제법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택배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다 보면, 회사 별로 혹은 택배기사 별로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어르신들의 배송 서비스에는 일반 택배기사님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 확연한 차이가 있는 느낌이다. 그게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감정 비슷한 것이기에 콕 집어 표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뭉클함일까? 편안함? 아니 그보다는 왠지 푸근함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평소 특별한 감정 없이 주고 받기 바빴던 택배 서비스이건만, 어르신이 그의 매개 역할을 하게 되는 순간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같은 게 함께 전달되고 있었다.

 

ⓒ뉴스1

 

혹시 어르신들 역시 누군가의 어버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배달을 위해 방문하신 어르신으로부터 왠지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면, 이는 과장된 표현일까?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정서가 무의식 중에 현실에 반영되지 말라는 법도 딱히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삶이 유독 팍팍하고 힘이 든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비록 많은 돈은 아니나 적어도 용돈벌이 정도를 가능케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노동으로 돈을 직접 벌 수 있게 한다는 점 때문에 어르신 택배 서비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데다, 큰 힘이 들거나 어려운 일 처리가 아닌 까닭에 적당히 몸을 움직이게 하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여러가지 이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가 직접 혹은 기업체와 제휴하여 앞다퉈 어르신 택배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것도 다름아닌 이러한 이유 때문일 테다.



어르신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게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다. 주변에는 일을 원하나 일자리가 부족하여 길거리의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여전하다. 부동의 OECD 1위인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하도 자주 인용하고 언급하여 이젠 입이 아플 지경이다. 이렇듯 어려운 처지에 놓인 우리 어르신들께 일자리를 연결시켜주고 일을 제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의 가치 그리고 보람마저 누릴 수 있게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 

 

아울러 그동안의 연륜이나 일을 하고픈 절실함 따위로부터 비롯됐을 법한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젊은 계층에게 있어 여러모로 귀감이 되게 한다. 때문에 어르신의 손에 꽉 쥐어진 배달 상품은 그 어떠한 경우라 해도 매우 소중히 다뤄질 것임을 마음이 먼저 깨닫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일반 택배기사님들이 배송 상품을 함부로 다룬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비록 단순히 타인의 물건을 배달하는 일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소중하게 다루는 그 정성스런 마음이 고스란히 읽힌다는 의미다. 

 

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절심함 그리고 현재 몸담고 있는 일에 대한 고마움이 몸에 배어있지 않다면 절대로 발현될 수 없는 삶의 태도다. 시간 개념이 철두철미하여 잘 지켜진다는 점도 어르신들만의 장점 중 하나이며, 이들로부터는 늘 묵묵함과 진정성이 묻어나온다. 같은 물건을 주고 받더라도 배달하는 이의 정성과 소중함이 함께한다면 이는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좋은 에너지를 듬뿍 부여받게 하는 셈이다. 어르신으로부터 상품이 배달될 때마다 그 진지한 태도가 고스란히 와닿아 왠지 코끝마저 찡해지는 느낌이다.

 

난 이래서 어르신들의 택배 서비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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