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새 날 2016. 5. 2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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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개설한 이래 난 1일 1포스팅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하지만 근래 글을 왜 쓰는가에 대한 아주 근원적이면서도 회의적인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저 일상을 끄적이며 삶의 흔적을 남겨놓자는 가벼운 취지로 발을 들여놓은 곳이 다름아닌 현재의 블로그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풋풋했던 루키의 수준을 넘어 어느덧 외견상 제법 성숙한 단계로 접어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든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글이 순전히 나만을 위한다기보다 남들에게 조금씩 보여지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타인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쓰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내가 의도했다기보다 주변 여건이 나를 그렇게 변모시켜 온 경향이 크다. 그런데 최근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한 번 설치한 이래 특별히 문제될 만한 소지가 없다고 여긴 까닭에 그다지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던 블로그의 배너 광고가, 내 포스팅 전체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배너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냥 빈 공간만 덩그러니 남은 채 하얗게 비워진 상태로 보여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2주전의 일이다.

 

ⓒ중앙일보

 

혹시나 해서 나의 광고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정책 위반 메시지가 와있었다. 메일을 확인해 보니 원인을 제공한 포스팅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고, 필요하다면 이의 제기를 하라는, 몹시도 상투적이며 기계적인 글이 배달돼 있었다. 난 문제가 될 법한 이미지 등을 삭제하고 알려준 방법에 따라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거부되고 만다. 이번엔 해당 포스팅을 아예 삭제하고 다시 이의 제기를 했다. 그러나 또 다시 거부됐다. 가만히 보니 단순하게 끝날 사안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글로벌 기업인 그 거대 회사와 나는 본의 아니게 지난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무려 2주간에 걸친 싸움이었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간다. 우선 서두에서 언급한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이 될 법한 사실 하나가 누락된 걸 새삼 깨닫는다. 비록 적은 액수이긴 하나 그래도 배너 광고 게재를 통해 일정 수익을 얻고 있던 참인데, 난 이를 마치 공기나 물의 존재 마냥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터다.

 

그러니까 부끄럽게도 광고 수익 역시 내가 글을 쓰는 여러 이유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후 내가 보인 행동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광고 수익에 연연하지 않았다면 난 정책을 위반했든 그렇지 않든 괘념치 않은 채 배너를 모두 삭제하고 그냥 내 갈 길을 가고 말았을 텐데, 난 솔직히 그러하질 못했다. 내가 직접 써내려간 글을 타의에 의해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는 건 사실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물론 선택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 되겠지만 말이다. 최악의 경우 문제가 된 콘텐츠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정책 위반을 해결하고 배너를 계속 게재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글을 그냥 놔둔 채 광고를 달지 않으면 그만이다.

 

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곱씹고 다시금 곱씹어 봐도 명쾌한 해답은 선뜻 떠오르질 않는다. 수십 차례씩 주고 받던 정책 위반과 이의 제기 메시지를 보면서 난 어느새 지쳐갔다. 이런 상황에서 글쓰기가 온전히 될 리 없었다. 그런데 내가 쓴 포스팅을 정책 위반과 관련한 내용에 비춰 꼼꼼하게 살펴보니 과거에 썼던 글들 중 문제가 될 법한 요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손발을 오그라들게 할 정도의 유치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 페이지뷰를 늘리려는 게 주 목적이었을 법한 소재의 글들이 제법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난 대대적인 정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1500개에 이르는 글들을 일일이 살펴야 하니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책 위반 해결 요구 사항이 점차 집요해지고 있는 데다 광범위해지기까지 하면서 절대로 해결 불가능할 것만 같은, 마치 미궁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던 까닭에 난 도중에 광고를 아예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나만을 위한다기보다 불특정다수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고, 실제로 그랬을 것이라고 나름 자부해오던 터인데, 실은 글의 소재 자체가 오히려 불쾌감을 유발시키거나 미성년자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될 수도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2주간에 걸친 작업을 모두 마치고 정책 위반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났다. 이는 육체적인 어려움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훨씬 큰 작업이었다. 비로소 글쓰기를 가능케 할 원기를 회복한 느낌이다. 이번 시련을 계기로 더욱 단단해지리라는 걸 난 확신한다.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일지도 모르나 또 다른 이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절실할 수 있는 사안이다. 특히 절망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글쓰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선사해주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다스리게 하거나 의식이 맑아지게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비로소 보이게 하는 일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노래한 이가 있다. '무일푼 막노동꾼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쓴 저자 이은대 씨는 글쓰기만이 행복하게 살아갈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며 글쓰기를 찬양하고, 또한 이를 주변사람들에게 널리 전파시키고 있는 와중이다. 더 나아가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안락하고 평온한 일상에 몸을 기댄 채 차 한 잔을 음미하며 고요한 변화를 기다려보는 것도 썩 괜찮다고 말을 한다. 글쓰기란 이렇듯 절망과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는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빛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 저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각기 모두 다르다. 하지만 글쓰기는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육체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행위 마냥 마음속 근육을 단련시킨다. 사실 매일 꾸준히 글을 쓴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습관을 들이는 일만으로도 어려우나 혹여 몸에 체화됐다 하더라도 때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때로는 외적 요인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앞서 든 이유들 외에, 글쓰기를 통해 글의 내용과 실제의 삶이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꾸준히 단련하고 자극시킨다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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