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있을 때 잘하라'는 아내의 말, 이의 있소

새 날 2016. 3. 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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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찰나다. 이는 비단 광활한 우주를 놓고 견주어 티끌만도 못한 우리네 삶의 비루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거나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간 현자들이 남겨놓은 글귀 한 조각을 가져와 굳이 읊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몸소 느끼는 바다. 젊은 시절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거나, 혹은 지금 돌이켜 보더라도 지나온 삶의 궤적은 한결 같기만 하다. 오래 살았다고 하여 과거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와닿지는 않노라는 의미이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지구상에서 잠시잠깐 동안의 소풍을 모두 마치는 날 이를 되돌아 본다 한들, 결국 앞선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나이, 우리나라 평균 수명으로 따진다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종착지를 향해 폭풍질주 중이다. 돌이켜 보니 아마도 나이라는 녀석이 반환점을 똑똑 노크할 때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평소 듣고 있어도 그다지 감흥이 없던 어느 노랫속 가사 하나가 이 즈음부터 폐부를 깊숙이 파고 들기 시작해 온 것이다. 이는 젊은 시절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던 사랑 타령 노래 모두가 흡사 나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담고 있기라도 한 양, 그러한 묘한 감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러한 모양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

 

이렇듯 우리의 유한한 삶 속에서 그나마 아내와의 인연은 정말로 각별하게 와닿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탄생은 곧 죽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만남 역시 일찍이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 누군가와의 인연은 반드시 이별을 수반하게 된다. 나 역시 지금의 아내와 언젠가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뜩이나 이 찰나 같기만 한 삶, 아주 짧디 짧은 인연을 맺은 채 아둥바둥 살아가면서도, 우린 늘 투닥거리기 일쑤이다.

 

요즘 아내와 함께 동네 하천변 산책로를 따라 걷거나 뛰곤 하는 게 일상이 됐다. 아니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부러 일상이 되게끔 노력 중이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하루 일과 중 시간을 쪼개어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비록 겉돌기는 했으나 어쨌든 10년 동안의 헬스장 경험이 큰 도움이 됐으리라 여겨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누군가와 함께, 아니 아내와 함께할 수 있음에 난 무한 감사 드리고 있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산책로를 걷고 있었는데, 나로 인해 무언가 잔뜩 뿔이 난 아내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네온다.

 

"있을 때 잘해라~"

 

물론 난 평소에도 자주 듣던 말이라 이번에도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참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의 해당 발언 속에는 아주 끔찍한 의미가 담겨있노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 아내와의 인연은 언젠가는 끝을 맺게 된다. 이는 필연이며, 우리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다. 그게 언제가 될는지는 오로지 하늘만이 아는 일이다. 아내 역시 익히 모르는 바가 아닐 테니 그러한 말을 했음이리라. 이 시점에서 우리 부부가 함께, 혹은 상대방의 죽음으로 인해 인연이 다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렇다면 인연의 끝맺음은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의 소풍을 모두 마치게 되는 경우가 될 테다. 물론 이러한 일이 절대로 발생해선 안 되겠지만, 아내가 먼저 소풍을 마감한다고 또 다시 가정해 보자. 만약 그렇다면 아내가 지금 내게 던진 발언은 그야말로 날카로운 비수로 돌변해 올 듯싶다. 내 가슴을 마구 후벼파며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 같다. 얼마나 후회 막급할까? 물론 아내 입장에서는 화가 단단히 난 처지이기에 실제로 그리 되라고 던진 발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실제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아내라고 하여 마음이 온전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내가 먼저 소풍을 끝내는 상황, 객관적으로 볼 때 이게 가능성이 제일 높긴 하다, 아내는 나의 부재로 인해 스스로가 내뱉은 발언 하나하나를 곱씹어가며 몹시도 자책하게 될 것 같다. 아내가 비록 말은 이렇게 험하게 하고 있지만, 진짜 속마음은 그와 전혀 다르다는 걸 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해당 발언은 우리 부부 모두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스크래치를 남기며 깊은 회한으로 몰아넣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 십상일 테다.

 

때문에 난 있을 때 잘하라는 아내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아내님, 제발 부탁인데요. 앞으로 이러한 발언은 서로가 삼가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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