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기계에 길들여진 우리 몸, 극복할 수 있을까?

새 날 2016. 3. 1. 13:59
반응형

10년 동안 적을 두었던, 나름 정이 들기도 했던 헬스장을 최근 그만두었다. 실은 특별히 그만두고픈 생각이나 마음은 없었다. 왜냐면 어느덧 헬스는 내가 싫든 좋든 그와는 별개로,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어 생활속 깊숙이 들어앉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 상황과 여건은 흡사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되었노라는 것을 내게 말하기라도 하는 느낌이다. 이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부터 비롯됐다. 그래, 이곳 생활이 오래되긴 했는가 보다. 미련 따위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다른 헬스장으로 옮기고자 하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참에 일상생활에 무언가 변화를 주고픈 생각 만 굴뚝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헬스장에서 거의 매일 1시간 남짓 해 왔던 게 과연 무엇이던가. 30분 가량 런닝머신을 이용해 뛰거나 걷고, 나머지 시간엔 윗몸일으키기 몇차례, 그리고 팔의 근력 유지를 위한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게 전부였다. 실은 다른 사람들처럼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던 건 아니나, 도구를 하나 둘 건드릴 때마다 내게 돌아오는 건 손목 등에 아로새겨지는 괴로운 통증 뿐이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운동량은 장시간의 시행착오 끝에 결론내려진, 나름 내 몸에 가장 무리가 가지 않는 최적의 조합이다. 내가 워낙 몸치라 도구를 올바르게 다루지 못하는 경향도 있으나, 언젠가 동네 한의사가 "신체 구조상 헬스보다는 요가가 더 알맞다"라며 내게 던진 충고처럼 나의 신체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은 무언가 엇박자인 것만은 틀림없다.

 

결국 내가 헬스장을 다니는 목적은 일정한 수준의 체중 유지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체력을 닦는 게 전부다. 그동안 헬스장에 다니면서 죽기보다 싫었던 운동을 지속 가능하게 했던 건 단순히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삶을 유지하고 싶노라는 지극히 소박하고 순수한 의무감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매일 헬스장에 꼬박꼬박 나간다는 건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물론 운동을 끝낸 뒤 땀을 흘리고 나면 개운한 느낌과 성취감이 들곤 하지만, 건강한 삶에 대한 중압감 등 일종의 의무감이 없었더라면 굳이 돈을 써 가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자, 당장 헬스를 그만 둔 상황이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찌할 셈인가. 어떤 식으로든 운동을 계속해 나가긴 해야 할 텐데 말이다. 물론 대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우리집으로부터 걸어서 10분 가량 떨어진 지역에 하천을 정비하고 천변에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만들어놓은 곳이 있다. 이 도로는 한강까지 주욱 연결되어 있어 자전거 타러 갈 때 자주 이용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 일단 러닝머신을 통해 소화했던 유산소 운동은 왠지 이 산책로를 활용하면 될 것 같다. 아울러 윗몸일으키기는 집에서 충분히 가능한 운동이고, 가벼운 팔 근력운동은 아령이나 맨몸운동을 통해 해소 가능할 것도 같다. 공기 탁한 좁은 실내에 놓인 기계 위에서의 달리기보다 탁 트인 자연 공간에서의 그것은 훨씬 매력적인 부분일 수도 있다. 나는 마음 먹은 김에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래, 쇠뿔도 단김에 뽑는 거다. 



어제 저녁이었다. 3월이 코앞인데 기온은 한겨울과 다름없었고, 매서운 바람은 완전히 시베리아를 방불케 한다. 목과 얼굴에 버프를 뒤집어쓰는 등 완전무장한 채 집을 나섰다. 집에서 산책로까지는 걷기 상태를 유지하고, 산책로에 접어들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러닝머신과는 무언가 느낌이 크게 다르다. 묵직하다. 물리적으로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가는 느낌이다. 실제로 러닝머신에서의 속도를 유지하며 같은 시간만큼 뛰고 보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근력 소모량이 어마어마하다. 비록 하루 동안의 결과에 불과하나, 과거 10년 간의 헬스장 경험으로 비춰 볼 때 차이는 확연하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은 이때 벌어졌다. 아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난 걸을 때 러닝머신 상에서 가장 익숙했던 속도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보폭과 속도를 그에 맞추고 있었다. 심지어 뛸 때조차도 그랬다. 평소 헬스장에서 걸을 때의 기계 속도는 5.0에서 5.6사이, 달릴 때는 8.0 정도를 유지했었는데, 난 어이없게도 산책로를 걸으면서도 기계에서의 5.0을 기억하고 어느새 몸을 그 속도에 맞추고 있었다. 10년 동안의 헬스장 생활은 나를 기계에 온전히 길들여지게 만들어왔던 셈이다.

 

ⓒ서울신문

 

물론 요즘엔 웨어러블 기기들이 대거 등장하고,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여 각종 어플들을 통해 우리의 신체 움직임을 그에 의존하게 만드는 경향이 크다. 나 역시 어플을 이용해 앞으로 나의 신체적 능력을 체크하고,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등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계 의존 방식과 러닝머신에 의해 길들여지는 그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헬스장 생활 10년차가 되니 일상 속에서의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 뿐 만 아니다. 걷거나 달릴 때조차 정교하리만치 내 몸의 적당한 운동 수준을 절로 맞춰주는 고마운 존재가 다름아닌 헬스장에서의 경험이다.

 

어쨌거나 이제부터는 이러한 기계적 의존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려 한다. 굳이 헬스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활하는 주변 곳곳에는 운동이 될 만한 요소들이 널렸다. 물론 나의 경우 헬스장 경험이 운동의 생활화에 큰 도움이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처지가 아닌, 처음부터 일상 속에서의 운동을 꿈꿔온 분들이라면 이를 일상의 일부로 자리매김시키기가 그리 녹록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할 사안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그러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과 추동력을 갖춘 셈이다.

 

자, 이제 시작이다. 오늘도 난 산책로를 열심히 달리며 이번 실험에 기꺼이 도전한다. 헬스장과 기계에 길들여진 나의 몸,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