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킬 미 달링> 관계를 통한 상처의 치유

새 날 2016. 1. 2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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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의 후손으로 태어나 엄청난 부를 상속 받은 야콥(예론 반 코닝스부르헤)의 삶은 무미건조함 일색이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임종을 맞이한 것이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어머니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슬픔에 잠겼을 법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에겐 아무런 감정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오히려 기회가 온 것이라 생각하는 야콥이다. 오랜 계획 중 하나였던 자신의 삶을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자살을 시도하던 그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죽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들어찬 상황, 그 때문일까? 우연한 기회에 기적처럼 '엘리시움'이란 기묘한 형태의 여행사가 그에게 다가온다. 이 여행사는 인생에 딱 한 번 뿐이자 마지막 여행을 보내주는 회사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옵션의 마지막 여행 상품을 안내하고 선택케 한 뒤, 자연스레 자연사 또는 사고사로 위장하여 삶의 마감 계획을 실현시켜준다. 물론 불법이기에 실제 여행상품의 판매 과정은 은밀하면서도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래 이거다, 이처럼 멋지고 편안하게 죽는 방법이 또 있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이 여행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처럼 해당 여행사를 통해 마지막 여행을 꿈꾸던 한 여성을 순전히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는 야콥이다. 왠지 그녀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두 사람 사이엔 무언가 인력 내지 끌림이 존재하고 있다. 안나(조지나 벨바안)라 불리는 깜찍발랄한 여성이다. 그와 그녀는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이를 매개로 서로에게 다가서며 마지막 여행을 꿈꾸게 되는데...

 

이 영화의 원작은 네덜란드 작가 벨캄포의 소설 '더 서프라이즈'로 알려져 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은 누구나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하지만, 왠지 다들 이를 드러낸 채 말하기를 꺼려할 만큼 칙칙하거나 어두침침함 일색인 데다 심지어 금기시하기까지 하는 게 보편적일 테다. 이 영화는 이렇듯 다소 어두운 주제라 할 수 있는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를 기발하면서도 무척 가벼운 터치의 로맨틱 코미디로 승화한 작품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은 살아있다는 자체가 죽음보다 괴롭기 때문일 테다. 때문에 저마다 각기 사연을 안은 채 그동안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 온 이들과 이를 시도했거나 혹은 앞으로 시도하려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말을 건네는 행위는 어쩌면 진정 주제 넘는 짓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스스로 삶을 끊는 행위를 두둔하고 싶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주인공인 야콥은 우리 같은 범인이 볼 땐 정말 부러울 만한 조건을 모두 타고 났다. 엄청난 재산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궐 같은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수십명의 사람들을 고용할 정도로 그의 재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왜 그토록 죽지 못해 안달인지 우리로선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에겐 씻을래야 도저히 씻을 수 없는 그만의 아픈 과거가 있다.

 

야콥에게 있어 바다는 고향과 같다. 4살 때 바다에서 겪은 아버지의 비극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채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며 한없이 옥죄어왔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과 울음 등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만다. 심지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그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산더미 같은 재산은 그에게 있어 전혀 위안거리가 되지 못한다. 아무런 목적 없는 삶을 영위해 오던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신 곳을 뒤쫓을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온통 그득하다.

 

 

'엘리시움'에서 만나게 된 안나 역시 그녀만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어릴적 부모가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어느 가정에 입양됐다. 양부모의 보살핌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한 그녀이지만, 입양아라는 존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가서기엔 무언가 늘 두터운 벽이 존재함을 느끼게 해 왔고, 이렇듯 채울 수 없는 결핍이 그녀의 허한 가슴 한켠을 항상 짓눌러 오고 있는 와중이다. 자연스레 현세보다 내세의 삶으로 저울추가 기울던 상황이다. 그녀는 내세의 삶을 믿고 있었다. 현재의 삶에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딱히 없다고 믿고 있던 터라 다음 생애엔 왠지 자신이 맘껏 누릴 수 있는, 멋진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가득찼다.

 

두 남녀는 죽음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됐고, 실제로 마지막 상황을 스스로 설정하기 위해 지나가는 트럭에 뛰어드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죽음으로 가는 여행상품이라는 기발하면서도 다소 발칙한 소재를 꺼내들긴 했으나 이를 통해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야콥과 안나는 함께 죽기 위해 의기투합한 채 만남을 이루게 됐지만 관계를 이어가면서 서로의 처지를 깨닫게 되고, 상호 상처를 보듬으며 결핍과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에서 삶의 가치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된다는 지극히 아름다운 이야기다.

 

 

야콥에게 있어 바다와 춤은 일종의 정체성이다. 바다는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밴 곳이고, 춤은 어머니와 함께했던 삶의 흔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야콥과 안나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중 바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잠깐 등장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본격적인 춤 장면은 영화가 모두 끝난 뒤 등장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빼어난 춤 솜씨는 이때 전모가 드러나게 되니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고 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면 분명 후회하게 된다.

 

사람에 의해 얻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결국 사람이 치유하는 게 맞지 않을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아무리 금수저라 해도 말이다.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통해 완벽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 서로가 관계를 맺으며 결핍을 채우고 아픈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사이, 되레 왜 삶은 살 만한 것이며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해야 함이 옳다. 

 

 

감독  마이크 반 디엠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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