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검사외전> 진중함과 코믹의 환상 콜라보

새 날 2016. 2. 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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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도래지를 개발하려는 업자와 이를 막으려는 환경단체 간의 갈등은 첨예하다. 개발업자는 여론을 자신들에게 우호적으로 반전시키기 위해 용역을 동원, 환경단체가 벌이고 있는 시위에 투입시켜 부러 폭력 상황을 조장한다. 이 과정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 한 명이 용역들에게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된다. 당시 폭력행위에 가담했던 용역 중 한 명이 잡혀들었고, 그는 열혈검사 변재욱(황정민)에게 할당된다. 

 

변 검사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폭력 행위를 일삼는 등 지나칠 정도의 열성을 보여온 탓에 수차례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이러한 과거가 그에겐 족쇄로 작용한다. 다소 과격하다 싶을 만큼 피의자들을 험하게 다루던 그에게 그의 상사인 차장검사 우종길(이성민)은 이번 사건에서 손을 떼고 변 검사의 동기인 양민우(박성웅) 검사에게 사건을 넘길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텼고, 이번 폭력 사태의 피의자마저 거칠게 다룬다.

 

 

그런데 다음날 예기치 않은 사건이 불거졌다. 취조실에서 피의자가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변 검사는 졸지에 파렴치한 폭력 검사로 둔갑되었고, 손엔 수갑이 채워진 채 호송줄에 묶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윽고 그의 상사인 우종길 검사의 솔깃한 회유가 이어지고 이를 그대로 믿은 변 검사,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였으나 그에게 15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된다. 교도소에 수감된 변재욱은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검사 경력은 척박한 환경의 교도소 내에서도 빛을 발한다. 정확히 5년만에 변재욱은 '영감'이라 불리며 죄수들 사이에서 최고 대접을 받는 인물로 등극한다. 그러던 어느날 황치원(강동원)이라는 전과 10범 사기꾼이 변재욱과 같은 교도소에 입감하는데... 



소재거리는 상당히 묵직한 재료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가벼운 연출을 통해 맛깔스레 버무려진 작품이다. 이 영화만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속 변재욱이라는 캐릭터는 천상 검사다. 수년간의 대학 공부와 신림동 고시촌에서 4년간 힘겹게 버틴 끝에 검사라는 직업인을 택하게 된 건 순전히 사회악을 뿌리뽑겠노라는 철저한 사명감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조폭과 같은 파렴치한들은 한 마디로 인간 쓰레기에 불과하다. 취조나 신문 중 피의자에게 가해지는 린치는 변 검사에게 있어선 일종의 정의감의 표출이다.

 

 

그러나 검사의 권력을 공권력이라는 명분 하에 피의자들에게 남용해 온 건 결국 인권 침해에 불과할 뿐, 법을 다루는 대리인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위임이 명백하다. 변재욱이 뜻하지 않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건 결국 그 스스로도 법정에서 인정했듯 그 동안의 업보가 나비효과로 작용하게 된 셈 아닐까 싶다. 검사에서 하루아침에 교도소의 수인으로 전락한 변재욱의 처지를 황정민은 그만의 성실하고 진중한 연기력을 통해 훌륭하게 소화한다. 변재욱 그가 겪었던 고통과 억울함의 크기가 어느정도였을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스크린을 통해 잘 전달되는 탓이다.

 

 

이성민이 맡은 우종길이라는 캐릭터는 앞과 뒤가 전혀 다른, 전형적인 사회 거물급 인사로 묘사돼 있다. 차장검사라는 직책에 오르기까지 모르긴 몰라도 갖은 술수와 묘략이 동원됐을 법하고,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기거나 이를 이용, 대중적 인기와 지지세를 넓히는 방식을 그동안 차용해 왔다. 다소 씁쓸하지만 이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꽤나 익숙한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성민은 근래 선과 악이라는 극과 극의 연기를 곧잘 선보여 왔다. 그의 악역은 자연스레 일그러지는 미세한 얼굴 표정 변화 하나 하나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될 정도로 연기력에 물이 올라 있다.

 

 

변재욱과 동기이지만 그와는 달리 상당히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 다름아닌 양민우다. 박성웅이 연기한 양민우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할 만큼 안정 지향에, 의심이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변재욱이 누명을 쓴 채 수인이 됨과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부장검사에까지 직위가 오르는 등 그는 조직 내에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변재욱이 손에 쥔 복수의 칼날을 똑바로 향하게 하는 데 있어 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법정에서의 변호사를 방불케 한 양 검사의 변론 신은 다소 어이가 없긴 하나 변재욱의 고통을 일정 부분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탓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준다. 박성웅의 연기로부터는 시종일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영화의 구도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한 축은 변재욱과 우종길, 양민우가 이루는 물고 물리는 이해관계와 사건들이고, 또 다른 축은 변재욱이 벌이게 될 복수 행각의 손발이 되어줄 황치원의 활약이다. 이번 영화가 코믹 장르에도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건 순전히 강동원의 활약 덕분이다. 황치원이라는 다소 과장된 사기꾼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그다. 강동원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황정민과의 조합은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깐죽거리거나 촐싹거리는 강동원은 얄밉다기보다 무언가 맹하면서도 어설픈 캐릭터의 대명사로 다가온다.

 

조폭과 연계돼 있는 경제계 인사와 그들을 연줄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혀온 정치 검사, 그리고 그들의 조직적인 계략에 의해 희생양으로 전락한 한 열혈검사, 이들 사이에 오가는 범죄 행각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투영하는 듯싶어 짐짓 섬뜩하게 다가오나, 강동원의 캐릭터가 지닌 특유의 코믹함이 그에 버무려지며 한 편의 훌륭한 팝콘무비로 탄생한 듯싶다. 설날 연휴 가족 친지 등과 함께, 가볍게 볼 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감독  이일형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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