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조선마술사> 마술 같은 판타지

새 날 2015. 12. 31. 13:39
반응형

환희(유승호)는 평안도 의주뿐 아니라 조선 전체에서 내로라하는 마술사다. 하지만 그에겐 씻을 수 없는 아픈 과거가 있다. 어린 시절 시각 장애인인 누나 보음(조윤희)과 함께 청나라 마술사 밑에서 학대를 받아오던 중 목숨을 잃을 뻔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탈출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평안도 의주에 위치한 '물랑루'는 환희가 주축이 되어 마술쇼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이곳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서민들의 삶에 간혹 웃음과 희망을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정치적 볼모가 되어 청나라 왕자에게 첩으로 팔려가게 된 공주 청명(고아라)은 사행단과 함께 혼례를 치르러 가던 중 의주에 머무르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환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환희는 그녀가 공주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어느새 그녀의 곱디 고운 심성과 외모에 반해 이내 빠져든다. 청명 역시 자신을 유일하게 사람 대접해준 환희를 잊지 못해 몰래 만남을 지속하게 되는데...

 

 

어떤 영화일까 무척 궁금했다. 사실 영화 제목과 두 남녀 주인공의 이름만 알고 관람하게 된 경우다. 결론부터 말해 볼까? 이 영화를 음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색다른 레시피를 이용해 다양한 장르를 한 영화 속에서 맛볼 수 있게 한 별미로 다가온다. 애초 특별한 기대감 따위가 없었기 때문일까? 의외로 재미있다. 군에서 갓 제대한 유승호와 응답시리즈로 인기몰이 중인 고아라의 출연은 자칫 청춘 로맨스물이라는 선입견을 줄 것도 같은데(실은 내가 그랬다), 환희와 청명 사이를 가로막던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애절한 로맨스가 펼쳐지긴 하나 실은 그러한 요소가 전부는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청명은 신분상 조선의 공주이지만, 사실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불쌍한 몸이다. 조선은 청명을 청에 파는 대가로 평화를 약속 받을 수 있었을 테고, 형제 자매들은 높은 직위와 재산을 보장받게 된다. 환희 역시 비천한 계급 출신으로 아무리 몸부림쳐 봐도 현재의 처지로부터 벗어날 방도가 전혀 없다.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며 현실속 어려움을 토로하는 우리 젊은이들도 마찬가지 심경이 아닐는지..



두 사람의 운명에는 이렇듯 서로 다른 듯하나 비슷한 처지가 맞물려 있다. 두 사람의 첫만남으로부터는 다소 우스꽝스럽고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의 작위적인 모습이 비쳐 슬쩍 거슬렸으나 이후로는 끊어질듯 이어질듯 아슬아슬 로맨스가 펼쳐지며 가슴 절절하게 다가온다. 청명의 호위무사로 출연한 이경영은 때로는 듬직하게, 때로는 유연함으로, 그녀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신의와 인격적인 완성도 높은 인물로 그려진다. 근래 출연작 중 가장 멋진 캐릭터인 듯싶다. 아울러 판타지의 대미를 그가 장식한다. 물론 이는 영화를 본 분만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철민을 비롯한 조연들의 깨알 같은 드립과 환희가 마술을 이용해 보초들을 눈속임하는 장면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한다. 영화는 악역 전문가(?) 곽도원의 본격적인 등장 이후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그리고 스릴러 장르로의 급작스런 변화를 시도한다. 흡사 롤러코스터와도 같다. 이번 작품에서 주요 소재인 마술은 신분과 계급 그리고 현재의 처지를 뛰어넘도록 해주는 역할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한켠에 꽁꽁 가둬놓고 있을지도 모를 답답함 따위를 확 풀어버리게 하는 판타지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로맨스를 기반으로 한 액션, 스릴러, 코믹, 그리고 판타지까지, 모든 장르에 두루두루 걸쳐져 있다. 물론 이러한 작품적 특성은 장점이 될 수 있겠거니와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 중 재미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핵심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면, 적어도 재미만큼은 보장해주는 영화다. 아울러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무언가 응어리져 있던 것들을 배설해내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젊은 청춘들의 애절한 사랑 얘기에 바보 같이 눈물을 찔끔 흘리게 되거나, 조연들의 포복절도할 만 한 깨알 드립에 웃음보를 터뜨리게 되고, 심장을 조여오는 듯한 스릴 그리고 통쾌한 액션, 아울러 각박한 현실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우리들에게 마술 같은 판타지를 통해 이를 초월하거나 극복해내는 장면을 보며 대리만족감을 얻게 해준다. 재미만으로도 모든 단점을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다. 다가오는 병신년에는 판타지적 감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감독  김대승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