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쁘다. 이에는 한 해가 또 다 갔노라는 심리적인 이유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겠지만, 비단 그런 류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몸이 바쁜 경우가 허다하다. 이 모임 저 모임 연말 회식 자리에 불려다니느라 몸이 모자랄 지경일 수도 있겠거니와 연말 결산이라는 업무적 중압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정치인들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엇그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연탄 봉사 활동을 나갔다가 본의 아니게 그만 인종차별 논란을 빚고 말았다. 도심 곳곳엔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추운 계절 가뜩이나 힘겨워 할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시기이기도 하다. 김무성 대표 역시 대중 정치인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유력 정치인으로서 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곳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테다. 혹여 보여주기식 행사였노라고 폄하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데 있어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신문
연말만 되면 정치인들뿐 아니라 각 기업체에서도 자매 결연 맺은 곳을 찾거나 특정 계층을 찾아 봉사 활동을 펼치곤 한다. 기업체마다 경쟁적으로 봉사 활동을 위해 내보내는 인력은 각 부서마다 인원을 할당할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부서 전체가 돌아가면서 책임을 분담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행사는 주로 연말에 몰려 있긴 하나 평소에도 특별한 날이 돌아올 때마다 의례적으로 행해지는 활동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관행이라면 관행이랄 수 있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 다름아닌 외국인이다. 간혹 외신이 우리나라의 사정을 객관적으로 짚을 때가 있듯이 외국인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저축은행업계 최초로 일본인이 선임된 SBI저축은행의 나카무라 히데오 대표가 최근 회사에서 진행된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단다. 소외 계층을 위한 연탄 전달 행사였는데, 직원들이 왜 근무시간에 나와 연탄을 배달하느냐며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업무시간이 아닐 때 조용히 처리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난 그의 일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울러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마저 들었다. 우선 회사 이름을 내걸고 근무시간에 우루루 몰려가 연탄 봉사 활동을 한다는 건, 물론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가 담겨 있긴 하지만, 이는 일종의 보여주기식 행사로써, 마치 김무성 대표가 자신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비슷한 활동에 나섰듯,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홍보 수단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정말로 소외 계층을 위함이라면 나카무라의 언급처럼 근무 시간이 아닌 시간에,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해결하면 될 그러한 사안이 아닐까? 결국 이러한 보여주기식 문화는 부차적인 문제마저 만들어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즉, 근무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탓이다. 직원들이 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봉사 활동을 나감으로써 회사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생산성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게 될 테고, 직원들 입장에서도 근무 시간에 처리해야 할 업무를 단순히 뒤로 미뤄 놓았을 뿐, 결국 그 반대급부로 빼앗긴 시간만큼 다른, 일례로 야간이나 휴일 등, 시간을 반납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 게 아닌가. 진정한 봉사라면 근무 시간이 아닌 개인 시간을 할애해 참여하는 게 참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우리식 관행은 어찌 보면 사실 매우 사소한 사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13년 기준 6만2000달러로 OECD 34개국 중 22위를 나타내고 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도 30달러로 OECD 국가 중 고작 25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괜한 게 아닐 테다. 업무와 업무 외의 것을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는 우리의 오래된 관행이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뉴스1
근무 시간에 연탄을 나르거나 다른 봉사 활동을 펼친 결과는 연간 노동시간을 잔뜩 부풀리는 효과마저 낳고 있다. 봉사 활동을 근무 시간에 하였으니 그만큼의 초과 근무는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일 테고, 밥먹듯 이뤄지고 있는 야간 근무와 휴일 근무는 어느덧 OECD 국가 중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최장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2천57시간에 달해 OECD 32개국 가운데 세번째로 길었으며, 자영업자와 가족종사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을 합치게 될 경우 그 결과는 더욱 참담해진다. 2천124시간으로 OECD 32개국 중 두번째다.
물론 한 가지 사례만으로, 더구나 외국인의 시선만으로, 우리의 노동생산성이며 노동시간의 문제점을 언급한다는 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단 앞서 든 사례만이 아니더라도 미처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기업들의 사소한 관행이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 먹는 결과를 낳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정치인도 그렇지만, 기업들의 소외 계층 봉사 활동 따위가 보여주기식 겉치레로 흐르는 경향이 크다는 사실을 우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이방인들 그들의 낯선 시선을 통해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린 무한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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