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임금피크제로 청년 일자리 창출 가능한가

새 날 2015. 9. 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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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노동개혁과 관련하여 지난 17일 "임금피크제가 정착될 경우 청년 일자리 약 13만개가 창출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신규 채용한 사업장 9000여 곳 중 30세 미만인 청년층 비율을 조사한 바 있는데, 다름아닌 이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사업장의 경우 청년층 채용 비율이 50.6%, 미도입사업장은 43.9%로 나타났으며, 결국 임금피크제 도입사업장이 그렇지 않은 사업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더 높더라는 근거로부터 비롯된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눈 뒤 청년 채용 숫자를 단순히 산술적으로 비교한 것일 뿐, 실제로 임금피크제가 청년 채용 증가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선 전혀 알려진 바 없을 뿐더러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비슷한 방식의 통계 자료를 통해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 확대와의 인과관계가 낮다는, 반대 논리를 펴고 있는 입장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따른 채용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4년까지의 채용률은 임금피크제 미도입 기관이 도입 기관보다 오히려 높은 것으로 드러나, 노동고용부가 제시한 근거와는 정반대의 결과였습니다.

 

ⓒ연합뉴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이 제시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 13만개의 창출 주장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임금피크제의 애초 도입 취지는 기업의 인건비를 줄이고 고령자의 조기 퇴직을 막아 정년을 보장해주기 위함입니다. 즉 임금피크제란 연공서열형의 임금 구조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조기 퇴직이 늘어나면서 사회문제로 치닫게 되자 그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성질의 것이지, 청년 일자리 창출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임금피크제가 마치 청년 일자리 창출에 있어 최선의 대안이라도 되는 양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양새입니다. 임금피크제의 신규 고용 효과를 강조하며 고령자의 줄어든 임금만큼 청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노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와 반대의 개념으로 맞물린 정년 연장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임금이 정년 연장으로 상쇄되는 구조이기에 전체 임금 총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장담은 애시당초 무리가 따르는 일입니다. 신규 고용 대상이 청년층이 되었든 그렇지 않든, 고용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혹여 임금피크제를 통해 실제로 임금 총액이 줄어들고, 그 절감된 재원을 통해 신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할지라도, 해당 기업들이 모두 청년 고용에 나선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는 기업이 돈을 벌게 되면 그 혜택이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고르게 퍼질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부르짖으며 정부와 여당이 그동안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해왔으나, 정작 이를 통해 이득을 본 기업들은 현금 보따리를 풀지 않고 곳간에 재어둔 채 어느덧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10조 원에 달해가는 씁쓸한 현실과 비견됩니다. 때문에 임금피크제가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효과를 다만 일부라도 누리기 위해선 청년층 의무고용할당제 따위의 강제적인 정책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은, 우리 경제 전체가 활성화되어 산업의 파이가 커지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청년층의 유입이 이뤄지는 현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한 언론사의 기사에 따르면 노인들의 천국이라 불리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후문 식당가 일대에도 올해 초부터 청년들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주머니가 얄팍해진 청년들에겐 이 곳의 값싼 한 끼 식사가 더 없이 반갑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심지어 대학가에서는 끼니를 무료로 해결할 수 있는 ‘학교식당 모니터링단’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과거엔 결코 볼 수 없던 기현상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굳이 '청년실신' 따위의 신조어 언급을 않더라도 청년들의 어려움을 직접 가늠해볼 수 있는 통계 지표 하나를 살펴볼까 합니다. 다름아닌 청년 빈곤율이 노인 빈곤율에 버금간다는 통계 결과입니다. 알다시피 우리의 노인 빈곤율은 OECD 부동의 1위에 머물러 있을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8-24세는 5명 가운데 1명꼴(19.7%)로, 25-29세는 10명 가운데 1.2명꼴(12.3%)로 상대적 빈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나, 60-64세의 빈곤율(20.3%)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화일보

 

3포세대, 5포세대, 7포세대를 넘어 어느덧 n포세대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청년들의 고충은 심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청년 고용 확대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정부 여당의 속내는 모두가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그러한 류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중되고 있는 청년층의 어려움을 앞에 두고, 자신들이 마치 청년 실업의 진정한 해결사라도 되는 양 이를 자처한 채 크게 떠벌리며 정책 홍보에 나서게 된 배경엔 곧 다가올 총선을 의식하며 고심한 흔적이 역력해 보입니다. 아마도 청년층의 표를 모으기 위한 치밀한 전략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여당이 펴고 있는 임금피크제의 논리로는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처방전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취약 기반이랄 수 있는 젊은층 공략을 위한 전략적 요소로서의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당장 청년들의 가까운 장래와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을 떠올려볼 때 결코 바람직스런 형상으로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 감축은 결국 노동자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한 정년 연장을 의미할 뿐, 직접적인 청년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까닭입니다. 아울러 가뜩이나 세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청년층의 고충을 헤아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통 미사여구뿐인 정책 홍보에만 열을 올려선 절대로 안 될 노릇입니다. 보다 실질적이면서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기본기부터 새로이 다지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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