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반쪽짜리 노사정 대타협, 진정한 개혁 가능한가

새 날 2015. 9. 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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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1년여의 진통 끝에 마침내 이뤄졌습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5일 오전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본위원회를 열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최종 의결했습니다. 사실 노동개혁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11일 노동개혁 입법 독자 추진 방침을 밝히며 최후통첩을 날릴 때까지만 해도 자칫 극단으로 치달을 우려가 감지되던 터라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댄 채 의견 조율을 거쳐 이번 합의를 이뤄낸 결과 그 자체에 대해선 높이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국회의 입법 절차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며, 노동시장에도 곧 커다란 변화가 몰아치리라 예상됩니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아무래도 노동자와 그 주변인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게 할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기준 완화 등에 관한 사안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노동계에서 강력하게 반대해왔던 두 사안과 관련하여 노사정이 정부의 가이드라인 마련 방침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노동자의 고용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용 보호 쉴드가 사라지는 탓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노동계에 불어닥칠 변화의 질감은 실로 엄청나리라 예상되며, 그 파장이 과연 어느 선까지 미치게 될지 가늠조차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삶, 더 나아가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할, 주요 쟁점이 됐던 구체적인 내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현행 근로기준법 23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타결로 인해 근로기준법이 명시하는 해고 외에 추가로 해고 기준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사용자의 입장에선 손쉬운 해고가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지금처럼 비리나 구조조정과 같은 경영상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더라도 단지 성과가 니쁘거나 근무 성적이 불량하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해고가 가능해지는 탓입니다. 물론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놓긴 했습니다만, 차후 이 조항이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뿐더러 근래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보노라면 이 약속조차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기준 완화 방안에 대한 입법화의 길이 열리면서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는 사규의 도입도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이는 양대노총 노조 가입률이 10% 가량에 불과한 전체 노동시장의 구조로 볼 때, 절대 다수를 이루는 비정규직이나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는 직격탄이 될 공산이 큽니다. 노조가 있는 경우 단체협약으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호되지만, 무노조 사업장에서는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이 개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역시 일반해고와 같이 정부의 일방적인 시행이 아닌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만, 과연 어느 정도가 충분한 협의에 해당하는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양측이 서로 해석을 달리하는 첨예한 부분들이 많아 추후 논란의 불씨로 남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질에 엄청난 변화가 예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어쩌면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바쁜 일상생활에 치여 이러한 사안에까지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보다는 노사정의 대타협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공감대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측면뿐 아니라 의견 수렴 자체가 기대에 미흡했던 탓에 이렇듯 자신들의 처지를 옥죄어오는 치명적인 사안을 직접 당사자인 그들 다수가 실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노노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노사정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타협을 야합이라 비판하며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습니다. 민주노총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10월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와 11월 민중총궐기 및 정치 총파업 등을 선언하면서 내년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대타협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전개될 노동시장 관련 사안들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입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역시 공식 성명을 내고 이번 대타협을 노동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합의라며 비난에 가세했습니다.

 

ⓒ노컷뉴스

 

대타협이란 거의 정반대로 맞서 있는 의견이나 주장을 서로 크게 양보하여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은 외견상으로 볼 때엔 노사정 각 주체가 서로 토론을 거쳐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룬 셈이라 적어도 형식 면에 있어선 대타협이라는 전제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킨 듯 여겨집니다만, 그 과정과 내용을 꼼꼼히 뜯어 볼 경우 대타협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왠지 무색해질 지경입니다. 실제로는 반쪽짜리 타협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정부와 사측이 그동안 노동계의 의견 수렴을 위한 노력에는 게을리한 채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방식으로 일관해온 끝에 노동계를 압박하여 억지 타협을 이끌어낸 데다, 직접 협상테이블에 앉았던 한국노총 또한 조합원들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며 노노 갈등 등 내부 분열 현상마저 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의 삶의 방향을 한 순간에 비틀 만큼 위력을 지닌 중차대한 결정을 협의한 노사정의 대화에 공식적으로 참가하지 않은 양대노총의 또 다른 축인 민주노총의 부재는 그 어느 상황보다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시장과 관련하여 미래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는 건, 대타협의 취지를 무색케 할 만큼 합의안 해석을 둘러싼 각 주체의 시각차가 너무도 극명하여 앞으로의 갈 길이 지금보다 훨씬 험난하리라는 전망 때문일 것입니다.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기대보다 우려가 더욱 크게 와닿는 이유 역시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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