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전업맘 vs 워킹맘 갈등 키운 보육 개편, 그 씁쓸한 뒷맛

새 날 2015. 9. 1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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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적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정부의 복지 축소 정책 기조가 영유아 보육 서비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부가 어린이집서 영아를 하루 12시간 무상으로 봐주던 공공서비스를 '워킹맘' 위주로 재편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 7월부터 0-2세 자녀를 둔 여성들은 자신이 일을 하거나 구직활동 중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하루 12시간에 해당하는 종일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0-2세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아무런 서류 제출 없이 종일 보육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별도의 서류 제출을 하지 않으면 어린이집에서 하루에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고, 대신 이들에겐 월평균 15시간에 해당하는 보육 바우처가 제공될 예정입니다. 종일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은 취업 한 부모 가정, 맞벌이 가정, 구직·취업 준비, 장애·질병, 자녀가 3명 이상 또는 영유아 자녀가 2명 이상, 임신, 생계급여 수급자, 매월 60시간 이상 자원봉사 실적이 있는 사람 등으로 한정됩니다.

 

ⓒ뉴스1

 

이러한 변화의 근저엔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3조원 규모의 복지사업 구조조정이라는 배경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해당 예산은 올해 2조9694억원이던 것이 내년에는 1460억원 삭감된 2조8234억원만 편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복지부는 0-2세 아동의 20%가 종일 보육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해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혀 사실상 해당 서비스의 축소를 기정사실화한 것입니다.

 

그동안 워낙 말을 많이 바꿔온 터라 큰 의미가 없을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영유아 전면 무상보육 방침은 애초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지난 1월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역시 전업주부가 불필요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수요를 줄이겠노라고 공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전업주부가 아이를 맡기는 것에 대한 물리적인 제한은 없을 것이라며 재차 약속했고, 결과적으로는 이마저도 뒤집어버린 셈입니다. 물론 공약 내지 약속이라고 하여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여건과 상황 변화에 따라 때로는 그에 맞도록 적절한 방향으로 수정해야 할 필요성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 정책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름아닌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전업맘과 워킹맘의 갈등이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업주부를 어린이집 무료 보육의 과잉요소로 지목한 채 이들에게까지 국가 돈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의 혜택을 줄 수 없다고 폭탄선언한 복지부의 방침은, 전업주부를 향한 좋지 않은 시각과 차별 의식을 은연 중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자칫 전업주부 때문에 일하는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노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매우 큰 탓입니다.

 

기실 일상 생활 속에서나 사회 전반으로 가정에서 이뤄지는 끝도 없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너무나도 쉽게 무시되고 평가 절하되기 일쑤입니다. 밖에 나가서 돈벌이를 위해 일하는 여성의 노동은 귀한 것이고, 반면 집에서 이뤄지는 여성들의 노동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한 채 지극히 당연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편견을 정부가 더욱 부추기고 나선 셈입니다. 그나마 이러한 대접은 다행인 축에 속합니다. 전업주부를 단순히 집에서 노는 여자 내지 지극히 잉여스러운 인간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며 어느덧 이들을 조롱하는 단계에까지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이들에 대한 비하가 심하였으나 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해 근래 노키즈존의 등장과 함께 유행어가 된 맘충 이미지가 전업주부에까지 덧씌워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업주부 조롱하는 한 포털의 베플

 

정부가 이른바 워킹맘 중심의 정책을 내놓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양 전업주부를 비하하는 표현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전업주부들은 집에서 놀면서 남편이 벌어오는 돈만 축내고 있으니 어린이집 종일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 하게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등의 격한 반응과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해 내심 고소하다거나 조롱 일색의 표현마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의 조건들이 무수히 따라붙는 건 예사입니다. 전업주부라는 지위가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양 철저하게 무시 당하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도 서로간 눈치를 보는 형국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아가 여성 전체를 싸잡아 비하하는 현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우리 사회는 계층 별로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불평등 구조마저 더욱 심화돼가고 있습니다. 이를 방치했다간 자칫 사회 불안 요소로 비화될 우려마저 있습니다. 일하는 여성이나 전업주부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겨누어야 할 적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든 대한민국이라는 생존경쟁의 틈 바구니 속에서 여느 여성들이라고 한들 편한 지위를 보장 받을 수 있을까요? 정부가 괘씸한 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시민들 간 발생할 수 있는 갈등 요소를 해결해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없던 갈등 구조까지 만들어낸 셈이니까요. 복지 축소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그로 인한 후유증을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시켜 서로를 적으로 삼게 만든 건 올바른 정부의 태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되었다면, 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해주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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