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혐오와 다름 사이의 극과 극 두 시선

새 날 2015. 6. 2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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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은 26일(현지시간) 동성결혼 합헌 판정을 내리고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였습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즉각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미국 전역은 온통 성적 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의미하는 무지개색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그동안 동성결혼 허가증을 발급하지 않았던 미국 14개 주에서는 행정 절차를 밟기 위한 동성 연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길게는 50년 가까이 미국을 뜨거운 논란속으로 몰아넣었던 동성결혼에 대한 합헌 결정은 미국 인권 신장의 진일보한 모습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날 연방대법원이 합헌 결정을 내리자 그동안 성적 소수자의 자유와 인권, 평등을 위해 힘겹게 싸워온 이들은 포옹을 한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번 동성결혼 합헌 판정에 대해 "지난 수년간, 심지어는 수십년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해온 당사자와 지지자들의 승리이자 미국의 승리"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여러분이 자신의 운명을 써 나가는 그런 곳이다. 우리는 미국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이번 결정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자평하기도 하였습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인들의 평등과 인권 신장을 향한 잰 걸음을 바라보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성적 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문화축제와 퍼레이드 등이 개최되었거나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결혼 허용 같은 미국의 진일보한 결정 따위는 그저 언감생심일 뿐, 1년에 단 한 차례 치러지는 퀴어축제 개최 하나만을 놓고도 우린 무수한 잡음에 시달려야 하는 입장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광장에서의 퍼레이드가 치러질 예정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결정이 있기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으며, 향후 남아 있는 어려움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그동안 특정 종교 일부 세력에 의해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서울광장 사용 신고는 지속적으로 좌절돼 왔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관철시키려는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다행히 서울광장의 사용을 득하긴 하였습니다만, 이번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해야 했습니다.  퀴어축제의 꽃인 퍼레이드를 아예 못하도록 시도하고 나선 탓입니다.  그러나 지난 6월16일 서울행정법원은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서울지방경찰청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금지통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그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집회의 금지는 원칙적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퀴어축제를 방해하는 세력의 움직임은 상당히 집요합니다.  지난 6월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개막식 행사장 주변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특정 종교 신자들이 대거 모여 행사 반대를 외치며 이들의 행사 진행에 훼방을 놓았습니다.  28일 예정된 퍼레이드에는 비록 행사에 대한 합법적인 결정을 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반대 세력이 이를 방해하고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물리적인 충돌로 인한 소동은 물론 자칫 불상사로 이어지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마저 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섰습니다.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집회가 동시에 개최돼 집회 참가자 간의 충돌이 예상돼 안전 문제에 대해 깊이 우려된다며 축제 참가자들의 안전 확보를 경찰에 요청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열악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잣대이자 다른 한 편으로는 미국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다지 바람직스럽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혐오하는 마음을 갖는 행위, 물론 자유입니다.  제아무리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에 대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인권 따위를 운운하더라도 성적 소수자에 대해 혐오하는 마음을 갖는 행위 역시 일종의 개인 취향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마땅히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는 그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에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들의 취향을 존중받는 만큼 타인들의 취향에 대해서도 똑같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적 소수자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틀림'이 아닌 '다름'의 영역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한들 이를 개인적인 이유에서건 아니면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혐오 하는 행위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권리라고 한 번 치부해 봅시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혐오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특정 이념이나 논리에 근거하여 틀렸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잘못됐으니 바꿔야 한다며 지적질을 하는 행위 또한 옳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더구나 성적 소수자들의 유일한 축제랄 수 있는 현장에서의 방해 행위는 어떠한 변명과 이유를 들이댄다 해도 정당하지 못한 비겁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약자를 향한 폭력 행위일 뿐입니다.  그들의 주의 주장이 보기 싫다면 차라리 지그시 눈을 감고 귀를 닫으십시오.  이에 대해 거창하게 인권 따위 운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일부 세력과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고 혐오 대상이기도 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헌 결정한 미국은 진정 미개한 국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일까요?  여전히 혐오의 대상이라며 손가락질하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네의 현실을 바라볼 때 적어도 수십년 이상은 앞서 있을 미국의 담대한 결정은 마냥 부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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