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성마저 사교육이 필요한 씁쓸한 세상

새 날 2015. 5. 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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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진흥법 시행이 한달 가량 남았다.  이 법은 과도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학교의 인성 교육 강화를 위함이 애초의 입법 취지다.  즉 우리 사회의 무너진 기강을 학교에서부터 바로 세우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셈이다.  가뜩이나 일베 류의 패륜적인 커뮤니티 따위가 사회의 독으로 작용하며 몹쓸 사상이 청소년들에게까지 무차별 확산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올바른 가치와 인성의 회복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이의 시행에 앞서 벌써부터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전국 초중고교는 해당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인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단다.  이를 위해 교원 연수기관 직무연수 과정에도 인성교육 역량 강화 과목을 운영하거나 사범대 등에서는 인성 관련 과목을 필수로 개설해야 하며, 당장 올 2학기부터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인성 교육을 시행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단다.  심지어 대학입시에까지 영향을 미칠 기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모 사립대는 올해 수시모집 학생부 전형에서 인성과 관련한 항목을 별도로 평가해 반영키로 했고, 여타의 대학들 역시 인성 면접 강화를 앞세우고 있는 추세란다.

 

ⓒSBS 방송화면 캡쳐

 

물론 학생들의 인성을 중시하고, 이의 강화 자체를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로 안다.  하지만 개개인의 성품을 나타내거나 사람마다 구별되는 독특한 심리인 '인성'이라는 추상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별도의 교육으로 해결할 것이며 또 그에 따른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인성이란 건 별도의 과목으로 가르치기보다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몸에 체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해당 법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창의적(?)인 데다, 별도의 교육이 이뤄질 경우 평가가 뒤따르게 될 테고, 이는 자연스레 입시와도 연계되다 보니 오히려 각종 부작용만을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이미 예견됐던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당장 인성교육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사설 교육기관과 관련 자격증 시장은 환영 일색이다.  뿐만 아니다.  인성 교육을 시켜준다는 사설 학원마저 등장했다.  SBS의 보도에 따르면 한 사설 학원은 입시에서 인성면접 대응 요령을 가르쳐 준다며 6차례 수업에 70만 원을 받는단다.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인성 교육을 통해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켜 주는 일은 할 수 없으나 착해 보이게 만드는 일은 얼마든 가능하다는 해당 사설 학원장의 발언이었다. 

 

어쩌면 솔직담백한 이 말 속에 앞으로 시행될 '인성 교육' 자체의 모순이 함의되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앞서도 언급했듯 애초 법의 도입 취지는 이러한 결과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문제는 이를 상업적으로 교묘히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있다.  우리의 사교육 시장은 이미 환경 변화에 능동적이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처신으로 정평이 나있다.  학교 체육 시간에 실시되는 뜀틀이나 줄넘기 따위를 가르치는 사교육도 버젓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최근엔 '프리미엄'이라 불리며 부유한 거주지역에서 붐처럼 일고 있는 사교육의 형태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가정에 수백만원을 들여 아이를 위한 홈 트레이너를 두거나, 일반 수영장과는 차별화된 전문 수영장, 그리고 프리미엄 독서실 등이 성황을 이룬단다.  이쯤되면 사교육의 진화는 그야말로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이렇듯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사교육 업계가 또 다른 특수가 될지도 모를 일선 초중고교에서의 인성 교육 시행을 그저 강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두고 볼 리가 만무하다.

 

아이들을 착하게는 못 만들어도 착해 보이게 할 수는 있다는 모토를 내건 사교육 업체들, 이는 기존 교육 콘텐츠에 '인성'자 하나만 덧붙여 마구잡이로 인성 교육 시장에 뛰어드는, 마치 불만 보면 환장한 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 같은 느낌이다.  대통령이 창조경제라는 화두를 던지자 너도 나도 '창조'자를 갖다 붙이는 얼치기 창조경제의 경우와 흡사하다.  요즘 아이들의 인성이 피폐해지는 진짜 이유는, 지나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과 물질 만능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 탓이다.  이를 외면한 채 엉뚱한 방식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함은 결국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 아닌가 싶어 못내 씁쓸하다.

 

인성 교육을 별도로 시행한다는 발상도 그렇거니와 이를 입법을 통해 강제화하는 행태도 실은 모양새가 상당히 우습다.  물론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강퍅해졌음을 방증하는 셈이니 우리의 처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지만, 사람 됨됨이인 '인성'에 점수를 매기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성이란 단기간의 교육으로 바뀌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사교육업체의 예에서 보았듯, 결국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속으로는 전혀 딴판이면서 겉으로만 착한 척 하는 가짜 인성으로 무장된 아이들의 대량 양산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통해 사교육의 잇속만 채우도록 도와주는 꼴이 아닌가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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